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할 때마다 수많은 닭과 오리 등이 살처분되고 있다. 대규모 살처분은 그 과정에서 관계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많은 보상금 문제를 야기한다. 또 대량 살처분 시 향후 수급 부족에 따른 가격 급등으로 소비자 피해마저 발생한다. 철새 등으로 인한 AI의 발생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확산 방지와 이에 따른 과학적 살처분이 병행돼야 경제·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AI 발생 시 이전과 다른 선택적 살처분을 통해 효율적으로 AI 확산을 방지해 나가고 있다.

2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8월 발표한 ‘AI 방역체계 개선방안’에서 과학적 분석을 기초로 방역상 문제가 없는 범위 내에서 방역대 설정 및 이동통제, 살처분을 최소화하도록 AI 긴급행동지침(SOP)을 개선했다.
정부는 AI 발생 시 그동안 일률적으로 오염(발생농장 기준 반경 500m), 위험(500m∼3km), 경계(10km 이내) 지역으로 방역대를 설정했다. 이를 기준으로 예방적 살처분, 이동제한 등이 실시돼 관리대상 농가가 늘고 인력과 소독, 초소, 장비 등의 소요 증가로 비용 부담이 컸다. 그러나 이번 지침 개선으로 적용범위를 탄력적으로 설정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우선 한 지역에서 AI가 발생하더라도 산, 강 등 자연적 요소와 고속도로 등 인위적 요소에 따른 지형적 여건을 고려하고, 기존 발생 농장과의 관계와 주변 농장들 간 관계 등 역학적 관계도 방역대 구성 시 참고키로 했다. 가금산업의 밀집도, 인근 철새도래지의 존재 여부와 철새 및 야생동물의 출현 빈도 등에 따른 위험도, 평균 기온, 강수, 강설량 등에 따른 바이러스 생존 가능성 등도 방역대 설정의 고려사항에 들어갔다.
이 지침은 하반기 발생한 AI에서 바로 적용됐다. 올해 초 영암에서 AI 발생 시 반경 3㎞ 이내에 있는 27개 농가 모두를 대상으로 예방적 살처분을 했다. 향후 검사결과 이 가운데 5개 농가만 양성 판정이 나왔다.
반면 지난 9월 전남 영암에서 AI가 발생했을 때를 보면 올 초 대규모 예방적 살처분과 큰 차이가 있다. 정부는 지난 9월 AI 발생 농가 반경 3㎞ 이내에 있는 60개 농가 중 3개 농가만 예방적 살처분을 했다. 살처분 후 AI 검사를 한 결과 예방적 살처분을 한 3개 농가 중 2개 농가만 양성으로 판정됐다.
◆선별적 가축 출하 및 소독
살처분 외에 가축 출하에도 변화가 생겼다. 올해 초 영암에서 AI가 발생했을 때는 가금농가 이동제한 규정에 따라 13개 농가, 16만7000마리의 닭과 오리 출하를 금지하고, 생계안정자금 1억1600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지난 9월엔 정밀검사 결과 음성인 경우 도축을 허용해 18개 농가에서 34만마리를 출하했다. 이동제한 조치로 인한 인력·관리비용과 질병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고, 출하일령 초과에 따른 폐사 증가를 막을 수 있게 됐다.
이는 AI 발생 농가 반경 3㎞ 이내 농가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일정 기간 이동제한을 하지만 출하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닭과 오리 등은 임상검사 및 정밀검사 후 가축방역관 지도·감독 하에 출하를 허용하도록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소독 방법 역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농가와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있다.
고속도로 입구에서 지나가는 모든 차량에 대해 소독을 했지만, 이젠 전파 위험성이 높은 장소에 거점 소독시설을 설치해 축산 차량을 선별적으로 소독하는 통제 소독을 한다.
과거 AI 발생 시 소독시설을 고속도로 나들목 등에 설치해 축산관련 차량 외에 다른 차량까지 소독을 하다 보니 비용 부담이 컸고, 효과도 작았다. 이에 집단사육지, 도축장 등 위험도에 기초해 축산시설 중심으로 소독을 하고 있다. 발생지역, 전파 위험성이 높은 지역 내 축산시설·차량과 철새도래지 인근 및 축사밀집지역 등에 대한 집중 세척 및 소독을 한다.
사료나 분뇨 차량의 경우 기존엔 사료업체나 비료업체에서 차량 소독을 하다 보니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하지만 지침 개선으로 사료와 비료업체에서 차량소독을 했는지 여부를 거점 소독시설에서 점검 후 소독필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이후 농장에서는 소독필증이 없는 차량의 경우 출입을 금지해 가축 질병 전파 위험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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