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 44편의 시가 담긴 이번 시집에서 김씨는 몸뚱이에 끈끈하게 붙어 있는 슬픔이나 우울을 그만의 독특한 언술로 풀어낸다. 이럴 경우 슬픔이나 우울은 화자가 눈감은 채로, 또는 걷는 채로 오롯이 치러내는 통증이자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이유가 된다.
“우는 구름을 덮고, 울은 그림자를 덮었네/ 우는 바람에 시달리고, 울은 바다에 매달렸네/ 우는 살냄새다 하고, 울은 물냄새다 했네/ 우는 햇빛을 싫어하고, 울은 발을 찼네/ 우는 먹지 않고, 울은 마시지 않았네/ 밥을 먹는데도 내가 없고, 물을 마시는데도 내가 없었네/ 우는 산산이고, 울은 조각이고/ 우는 풍비이고, 울은 박산이고/ 내 살갗은 겨우 맞춰 놓은 직소퍼즐처럼 금이 가네/ 우는 옛날에 하고, 울은 간날에 울었네”(‘우가 울에게’에서)
그는 무생물인 안경 등과 보통명사 등에 대해서도 툭툭 한마디를 내뱉고 사유와 이미지를 진전시킨다. 닿을 듯 말 듯한 문장 속에서 리듬은 잘 살아나 경쾌함과 탄력으로 우리의 이성과 감정을 뒤흔든다.

특히 그가 1년여에 걸쳐 완성했다는 장시 ‘맨홀 인류’는 몸의 움직임과 이 움직임을 주재하는 텅 빈 구멍에 집중한다. 그는 우리가 구멍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텅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욕망이 지배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노래한다.
“구멍의 본질은 불꽃 내부의 텅 빈 공간처럼 속이 비었다는 것./ 혓바닥은 그곳, 아무것도 없는 구멍 끝에 속옷도 입지 않고 매달려 핥고, 오 오 오 소리를 낸다는 것./ 그러므로 욕망을 잘 다스리라는 말은 순대의 속, 그 텅 빈 곳을 잘 다스리라는 말!/ 세상에, 보이지 않는 곳을 어떻게 다스리라는 말씀들인지!/ 배고픈 순대들 속에 좌정하고 계시다는 공장장님은 어떻게 생겼을까?”(‘맨홀 인류’ 부문)
김경주 시인은 “김혜순 시집은 전체가 하나의 ‘움직이는 미로’”라며 “이 미로의 복도로 들어가면 묘연한 적막과 선연한 긴장의 정전기들이 가득한 주조음(主調音)이 숨쉰다”고 상찬했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