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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소리 듣더니 총기 난사했다” 증언…中 난징대학살 생존자 별세 [차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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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김희원 특파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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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 궈슈란 별세…생존자 20명 남았다
도쿄재판 개정 80주년 “日 군국주의 폭로”

중국 난징대학살 생존자 한 명이 또 세상을 떠나면서, 공식 등록된 생존자가 20명으로 줄었다. 참상을 직접 증언할 수 있는 이들이 고령으로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가운데, 중국에서는 올해 도쿄재판 개정 80주년을 맞아 난징대학살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8일 난징대학살 희생동포기념관 발표를 인용해 생존자 궈슈란이 전날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중앙TV 등은 그가 이날 오전 10시쯤 자택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향년 94세.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 7월 7일, 중국 장쑤성 난징시의 '난징대학살 피해자 기념관'에서 열린 '중국 전면적 항일전쟁 발발 89주년' 기념식에서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7월 7일, 중국 장쑤성 난징시의 '난징대학살 피해자 기념관'에서 열린 '중국 전면적 항일전쟁 발발 89주년' 기념식에서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1932년 태어난 궈슈란은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했던 1937년 당시 다섯 살이었다. 그는 생전 증언에서 일본군이 난징에 들어온 뒤 부모와 세 자매, 이웃들이 현재의 장룽차오 인근 방공호에 숨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이 울음소리를 들은 일본군이 방공호를 찾아냈고, 입구에 서서 안쪽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는 것이다.

 

궈슈란은 생전 “30분쯤 지나 동굴 안이 조용해졌고, 나는 땅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며 “일본군 세 명은 인기척이 없자 떠났다. 그때서야 부모님과 막내 여동생이 숨졌다는 것을 알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막내 여동생은 어머니 품에 안겨 숨졌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있었다”고도 전했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12월13일 일본군이 당시 중화민국 정부 수도 난징을 점령한 뒤 약 6주 동안 벌어진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중국 측은 당시 일본군에 의해 민간인과 군인 등 약 30만명이 희생됐다고 보고 있다. 2014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매년 12월 13일을 난징대학살 희생자 국가추모일로 지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참상을 직접 증언할 수 있는 생존자는 급격히 줄고 있다. 중국 정부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문서와 영상 기록으로 보존해왔다. 난징대학살 관련 문서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현재 난징대학살 피해자 지원 및 역사 기억 계승 관련 단체가 관리하는 등록 생존자는 20명만 남아 있다.

 

올해는 도쿄재판이 개정된 지 8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도쿄재판은 1946년 5월3일부터 1948년 11월12일까지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으로, 미국·중국·영국·소련 등 11개국이 참여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A급 전범들을 심리했다. 재판부는 도조 히데키 전 일본 총리 등 25명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이 가운데 7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중국 언론은 올해 들어 도쿄재판 개정 80주년을 계기로 난징대학살 책임 규명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신화통신은 지난 5월 도쿄재판 개정 80주년을 맞아 난징대학살 희생동포기념관과 731부대 죄증전시관, 도쿄재판 중국 대표 판사였던 메이루아오의 옛집 등을 찾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도하며, 도쿄재판을 “일본 군국주의 범죄를 폭로한 정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중국 관영매체와 관련 기관들도 최근 잇따라 학술행사와 전시를 통해 이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지난 5월 말에는 상하이교통대와 난징대학살 희생동포기념관이 도쿄재판 개정 80주년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는 중국과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러시아, 독일, 브라질 등 여러 나라의 전문가들이 참석해 도쿄재판의 역사적 의미와 한계, 전후 국제질서에서의 법적 의미를 논의했다.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광명일보 등 중국 주요 매체도 이를 크게 다루며 “역사 정의 수호”와 “전후 국제질서 유지”를 강조했다.

 

도쿄재판에서 난징대학살은 일본군의 대표적 전쟁범죄 중 하나로 다뤄졌다. 중국 측은 도쿄재판을 통해 난징대학살과 중국 침략의 책임이 국제법적으로 확인됐다고 보고 있다. 다만 중국에서는 도쿄재판이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모두 충분히 처벌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함께 제기된다. 특히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세균전,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피해 등은 충분히 규명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중국 학계와 관영매체를 통해 반복되고 있다.

 

난징대학살과 관련해서는 중국 내에서 열린 별도의 전범재판도 있었다. 난징 전범재판은 일본군의 난징 점령과 학살에 관여한 일본군 지휘관과 가해자들을 심리한 재판이다. 대표적으로 일본군 제6사단장이었던 다니 히사오는 전후 난징으로 압송돼 재판을 받았고, 1947년 3월 난징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중국 측 기록에 따르면 그는 난징 점령 당시 부대를 지휘하며 민간인과 포로 학살, 강간, 약탈, 재산 파괴 등을 방조하거나 책임졌다는 이유로 유죄 판단을 받았다.

 

난징 전범재판에서는 다나카 군키치, 무카이 도시아키, 노다 쓰요시 등 난징에서의 학살 행위에 연루된 일본인 전범들도 처벌됐다. 중국 난징대학살 희생동포기념관은 이 재판들을 난징대학살의 범죄 사실을 법적으로 확인한 절차로 평가하고 있다.

 

중국이 생존자 증언 보존과 전범재판 기록 재조명에 힘을 쏟는 것은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 움직임에 대한 경계와도 맞물려 있다. 중국 매체들은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기술 문제, 전쟁 책임 부정론 등을 거론하며 도쿄재판과 난징 전범재판의 의미를 강조해왔다. 올해 관련 보도가 이어지는 것도 생존자 감소와 맞물려, 난징대학살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 당국과 기념관은 생존자들의 구술과 영상, 문서 기록을 계속 보존하겠다는 입장이다. 난징대학살 희생동포기념관은 생존자들의 증언이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증거”라며 전쟁의 기억을 보존하는 일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과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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