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남정훈 기자]“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스포츠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표현이다. 아무리 슈퍼스타라고 해도 팀이 먼저이며, 선수 개개인은 팀내 위상이나 인기에 상관없이 팀에서 정한 체계나 규율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만 이 표현이 어느 맥락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일반적인 수사가 아닌, 누군가를 저격하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로베르트 모레노(스페인) 감독은 지난 6일 용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9~10월 A매치 4연전의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하나 더 “문제가 생기면 대면 상황에서 얘기를 해야한다. 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특정 선수를 거론한 것은 아니기에 그저 일반론적인 발언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모레노 감독의 기자회견을 마치고 일어난 ‘용인 96라인 은퇴 소동’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발언이었다.
모레노 감독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손흥민(LAFC),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조현우(울산) 등 주요 선수들의 믹스트존 인터뷰가 끝났을 무렵, 취재진 분위기가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믹스트존을 거치지 않고 나갔다고 알려졌던 ‘96라인’이라 불리는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황인범(포르투), 황희찬(샬케 04)이 아직 라커룸에 남아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사실이었다.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한 언론이 대표팀 은퇴를 시사하는 발언을 동료들에게 했다는 단독 보도를 내면서 분위기는 더욱 출렁였다.
그들이 대표팀 은퇴를 진짜 결심한 것 아닌가 의심케 할만한 징조도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전을 마친 뒤 황인범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이후 라커룸으로 들어간 황인범은 황희찬, 김민재와 다시 그라운드로 나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었고, 서로 어깨동무하고 얼싸안는 모습이 포착됐다.
궁금증이 커가던 상황에서 황인범이 대표로 믹스트존에 서서 인터뷰에 나섰다. 그는 “오늘 경기를 앞두고 친구들과 ‘진짜 우리 최선을 다해서 후배들에게 뭔가를 보여주자’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어린 선수들이 원 없이 자기가 잘하는 축구를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면서 “오늘 경기가 끝나고 감정이 많이 올라왔다. 대표팀이 오면 항상 ‘이 경기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들이 오늘 더 강해지면서 눈물이 나왔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표팀 은퇴에 대해 황인범은 선을 그었다. 그는 “11월 A매치 소집은 감독님이 선택하실 문제”라며 “은퇴 준비는 늘 하고 있다. 선수 생활을 잘 내려놓는 것도 현명한 사람이다. 미리미리 준비해놔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나이가 들면서 눈물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끝나는 듯 했으나 황인범은 다시 라커룸으로 들어가 김민재, 황희찬과 함께 현영민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과 대화를 나눴고, 면담은 자정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그만큼 세 선수가 현재 대표팀 상태에 대한 불만과 고충이 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간인 이상 그럴 수 있다. 한국에서 공을 제일 잘 차는 사람들끼리 모인 대표팀이니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선 불화가 생길 수도 있고, 더 친하고 덜 친한 사이가 생길 수도 있다. 9년째 대표팀 주장을 역임하고 있는 손흥민과의 불화설은 축구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인터뷰 보이콧을 둘러싸고 손흥민을 위시로 한 고참 라인과 96 라인 간의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상황에서 경기력도 그리 좋지 못하다 보니 이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도 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방식이다. 아무리 임시 감독이라도 엄연히 감독이다. 외부로 불만이나 현재 상황에 대한 고충을 알리는 것보다는 내부에서 답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김민재는 베네수엘라전을 마친 뒤 “수비수들이 불쌍하다. 특정 선수가 빛나려 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머리를 처박고 뛰어야 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황인범 역시 단어 자체는 과격하진 않았지만 “몸도 마음도 힘들다. 도와줄 분이 안 계신다. 회장님도 안 계시고, 감독님도 임시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고 토로하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모레노 감독은 이들이 엄연한 존재하는 체계를 흔들고, 선수단 내부의 일을 밖으로 알리는 방식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것으로 느꼈을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전을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이 단순한 일반론적인 발언이 아닌 96라인을 향한 충고 혹은 경고의 메시지로 들리는 이유다.
일단 9~10월 A매치 4연전은 끝났다. 11월 A매치 2연전이 남아있다. 96라인 3인방은 기량만 따지면 아직은 대표팀 내에서 대체 불가 수준의 자원들이다. 모레노 감독은 11월에도 그들을 과연 부를까. 아니 부르더라도 뒤에도 중용할까. 11월 A매치 2연전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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