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으로 교역 중단되자
2000㎞ 떨어진 포르투서 수입
달고 독한 맛으로 변질 막아내
조금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여행지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인 포르투. 포르투 여행 계획을 짜면서 1순위로 넣었던 것이 와이너리 투어다.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 ‘사이드웨이’(2005)를 본 후로 오랜 시간 와이너리 투어를 꿈꿔 왔는데, 포르투가 와인의 도시라고 하니, ‘드디어 때가 왔구나’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와이너리 투어에서 내가 정작 반한 건 와인 맛이 아니었다. 가이드가 설명해 주는 와인의 역사에 홀딱 반했다.
포르투 와인은 ‘포트와인’이라 부른다. 이 포트와인은 ‘전쟁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부터 일단 비범하다. 이 와인의 역사는 17세기 영국-프랑스의 백년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와인을 일상에서 즐겨 찾는 영국인들은 프랑스로부터 와인을 수입해 마셨다. 하지만 백년전쟁으로 프랑스 와인 수입이 전면 중단되자, 와인을 가져올 대체지가 필요했던 영국은 와인 공수할 곳을 눈에 불을 켜고 물색했다. 그때 영국이 찾은 곳이 바로 포르투다.
포르투는 일조량과 강수량 등 기후 조건이 프랑스 대표 와인생산지 보르도를 닮아 포도를 재배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게다가 항구도시여서 영국으로 와인을 공수하기에도 최적의 입지였다.
문제는 이동 과정에 있었다. 포르투에서 런던까지 거리는 2000㎞. 배가 영국에 도착할 때쯤이면 와인은 발효돼 식초가 돼 있기 일쑤였다. 이걸 어쩐다. 와인에 진심이었던 영국인들이 찾은 방법은 주정강화 해법이다.
주정은 알코올을 뜻하는 것으로 ‘주정을 강화했다’는 건 곧 ‘알코올 도수를 높였다’는 의미다. 와인에 독한 브랜디를 넣어 알코올 도수를 높이면 와인 효모가 활성화되는 걸 막을 수 있음을 여러 시행착오 끝에 발견한 영국인들은 와인을 발효시키는 도중에 77도짜리 브랜디를 쏟아부었다. 브랜디가 방부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렇게 탄생한 포트와인 특징은 첫째, (브랜디가 들어가기에) ‘독하다’. 둘째, (발효가 중단되는 과정에서 당 성분이 술에 남기에) ‘달다’. 이 달고 독한 성질은 영국인뿐 아니라, 세계인의 입맛을 저격했다. 변질을 막으려는 고육지책이었으나, 이로 인해 포트와인은 다른 와인과는 차별화되는 그만의 고유함을 입게 됐으니 이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이 아닐까.
포트와인은 장기보관이 가능하기에, 포르투엔 아이가 태어난 해에 만든 와인을 보관했다가 성년이 됐을 때 축배를 드는 집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사이드 웨이’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특별한 날에 와인을 따는 것이 아니라, 그 와인을 따는 날이 특별한 날”이니 특별한 날을 만들어 줄 와인 몇 병을 구매하며 투어를 마쳤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와인 투어를 한 저녁, 리스본이 연고지인 ‘벤피카’와 ‘포르투’의 축구 경기가 열렸다. 벤피카와 포루투는 포르투갈 리그 내 최대 라이벌로 두 팀의 맞대결은 ‘우 클라시쿠’라고 불리며 팬들의 높은 관심을 산다. 게다가, 웬 횡재. 포르투에는 황인범이 있지 않은가. 포르투에서 황인범을 응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찍이 표가 매진됐기에 경기장을 찾지는 못했지만, 포르투갈의 뜨거운 축구 문화를 즐길 겸 일행들과 펍에서 축구를 보기로 했다.
그렇게 펍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포르투가 골을 넣자마자 팝 내 분위기가 싸해지는 걸 느꼈다. 동시에 펍 주인장의 얼굴에서 발견한 ‘썩소’. 알고 보니, 우리가 간 펍은 리스본 출신 사장이 경영하는 곳이었고, 그곳을 찾는 손님 대다수도 그랬다. 그러니까 적의 한가운데에서 포르투를 응원한 셈인데,
그러고 보니 이 펍에는 포르투 대표 맥주 ‘슈퍼복’ 대신 리스본에서 인기라는 ‘사그레스’만 있었다. 포트와인으로 달궈진 취기가 사그레스 앞에서 싹 식는 느낌.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도망치듯 나오는데, 등 뒤로 황인범이 골 넣는 소리가 들렸다. 이 순간을 놓칠 수 있나. 소심하게 외쳤다. ‘건배!’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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