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對中 투자 큰 이득에 ‘전략적 침묵’
외교 아닌 경제수장이 협상…‘실용주의’ 변화
“韓, 외교 이상주의 대신 유연한 현실주의 해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워싱턴 방문을 앞두고 미국 내 시선은 여전히 무역적자, 관세, 농산물 구매 약속 같은 익숙한 이슈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전쟁이다. 제조업과 상품 수출이 국가 경쟁력을 규정하던 시대는 저물었고, 오늘의 이익은 공장 라인이 아니라 디지털·금융 부문에서 창출되고 있다. 제조업 기반 이익은 금융·투자 기반 수익을 따라잡기 어렵다. 미국 여론은 이 구조적 변화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지만, 워싱턴은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누구보다 이 역학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2025년 미국 국가안보전략은 이러한 변화를 ‘유연한 현실주의(Flexible Realism)’라는 이름으로 정책화 했다. 미국은 더 이상 글로벌 시스템 운영자나 자유주의(Liberalism)의 전도사가 아니다. 이념이 아니라 이민, 관세, 에너지, AI 같은 구체적 이슈가 외교의 우선순위가 되고, 동맹 역시 역사적 감정이 아니라 이러한 사안이 맞물릴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이 변화 속에서 미국의 대중국 접근은 더욱 실용주의적으로 변했다. 미국 대중은 중국과의 안정적 관계를 선호하지만, 의회는 강경하다. 이를 조율하기 위해 워싱턴은 이중 전략을 구사한다. 무역문제는 단순하고, 대중이 이해하기 쉬우며, 유권자에게 가시적인 영향이 있기 때문에 강조하는 반면 투자 문제에 대해서는 전략적 침묵을 유지한다. 미국이 중국 내 투자에서 막대한 흑자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플과 테슬라 같은 미국 다국적기업은 중국에 기반한 첨단 제조 공급망 덕분에 글로벌 시장에서 초경쟁적 지위를 유지하고 막대한 이익을 미국 경제로 되돌려 보내며, 미국을 중국 산업 역량의 직접적 수혜자로 만든다. 미국 경제분석국(BEA)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다국적기업들은 중국에서 연 600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이는 미·중 관계의 실질적 핵심이 깊게 뿌리내린 자본투자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진짜 전장은 무역이 아니라 중국의 대미 투자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다. 미국은 여기서 1980년대 일본 기업을 미국 내로 내국화 했던 일본 모델을 다시 꺼내 들고 있다. 당시 일본 제조업이 Toyota Way로 상징되며 미국 시장을 잠식하자, 워싱턴은 일본 기업을 미국 영토 안으로 끌어들여 공장·기술·일자리를 미국 국익에 장기적으로 부합되는 구조로 고착시켰다.
이 전략은 최근 틱톡 사례로 되살아났다.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됐던 틱톡은 이념적 금지가 아니라 강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미국 내 합작법인으로 전환되었다. 기술·데이터·자본을 미국 안에 가둠으로써 위협을 경제적 자산으로 전환한 셈이다. BYD 같은 중국 전기차 기업의 미국 투자를 ‘열린 듯한’ 태도로 신호하는 것도 같은 계산이다. 장기적으로 중국 기술과 자본을 미국 안에 묶어두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중국의 대미 투자를 현실화하는 일은 워싱턴과 베이징 모두에게 극도로 어렵다. 중국기업들의 미국 진출의 의지는 분명하지만, 그 투자가 실제로 작동하기까지는 시간·입지·정치라는 제약이 따라붙는다. 중국 경영진은 민주·공화 양당정치, 선거 주기, 그리고 어느 당이 어느 주정부를 장악할 지조차도 예측하기 어려운 파편화된 정치 지형을 통과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같은 민주당 기반 지역에서는 중국 투자가 기술과 일자리 창출과 연결되며 환영 받을 수 있지만 공화당 정부에서 승인·집행되기는 어렵다. 반대로 사우스캐롤라이나 같은 공화당 기반 제조업 주는 연방정부의 의지가 있더라도, 중국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즉각적인 여론의 반발이 촉발될 수 있다.
이러한 미국내 정치의 변동성 때문에 공적 담론을 무역으로 되돌린다. 무역은 훨씬 더 설계하기 쉽고, 실제로 실행하기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 문제는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정치적으로도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미정부는 유권자들에게 즉각적인 진전을 보여주기 위해 보다 단순하고 포퓰리즘 적인 무역 담론에 집중한다.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이러한 모순은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BYD와 샤오미의 CEO가 외교 대표단에 합류하는 것은 시진핑 정부가 의도적으로 꺼내든 전략적 협상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 설령 이들 중국 기업이 미국 투자와 관련한 고위급 MOU에 서명한다 해도, 그 합의가 미 의회의 강도 높은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각본화된 무역 양보와 상징적 투자양해각서 정도다. 설령 투자합의가 정치적 상징성은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 의회가 이를 수용하거나 비준하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정상회담의 화려한 장면 뒤에 놓인 구조적 제약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협상 주체가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중국의 허리펑 경제부총리라는 사실이다. 이는 2023년 바이든 정부 시기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니컬러스 번스 주중대사와 왕이 외교부장, 차이치 비서실장이 주도했던 외교·안보 중심 협상과는 완전히 다른 구도다. 트럼프 시대의 정상회담은 더 이상 안보나 타이완 문제가 중심이 아니라, 투자·공급망을 둘러싼 실질적 경제 의제가 핵심임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구조적 마찰은 한국 같은 중견국에 비대칭적 기회를 만들어낸다. 워싱턴은 중국과 한국에 전혀 다른 논리를 적용한다. 중국의 투자는 극도의 의심 속에 바라보지만, 한국의 투자는 공격적으로 장려한다. 미국 의회와 대중 모두 한국 자본을 폭넓게 환영한다. 삼성, SK, 현대 등 한국 대기업들은 이미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내 생산시설을 구축해 왔으며, 발표된 한국의 대미투자 규모는 약 3500억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한국 자본은 미국에서 양당과 노동계 모두가 환영하는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한·미 동맹이 점점 거래적 관계로 변하는 만큼, 한국은 혈맹이라는 감성적 서사에 기대서는 안 된다. 미국은 거대 담론이나 이념적 연대를 중시하지 않는다. 사안별 실질적 기여만을 평가한다. 미국은 한국에 더 높은 방위비 분담, 더 큰 지역 안보 책임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핵심 동맹일수록, 미국의 요구는 더 무거워질 위험이 있다.
이 새로운 환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 한국은 미국의 실용주의를 정확히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자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단순한 경제 활동이 아니라 국가의 전략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분열된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다국적기업의 본국 국적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신뢰받는 동맹국의 기업 투자는 이제 핵심적인 지정학적 자산이다.
워싱턴의 외교정책은 더 이상 외교 비전이나 이념적 연대를 보상하지 않는다. 지금의 미국은 사안별, 이슈 기반의 가치에 반응한다. 이는 한국이 역사적 정서나 동맹의 향수에 기대어 미국과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대신 한국은 미국이 적용하는 것과 같은 실용적 논리로 미국을 접근해야 한다. 즉, 구체적 기여, 측정 가능한 성과, 분야별 협력이다.
미국과 중국이 차갑지만 이해관계 기반의 평화를 모색하는 지금, 한국은 외교적 이상주의를 내려놓고 스스로 유연한 현실주의적 사고를 채택해야 한다. 실용적이고 이슈 중심의 전략만이 한국이 중국에서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면서 동시에 미국과의 대체불가적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고영진 하버드대학교 페어뱅크센터 방문교수/성균관대학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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