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하지만 모든 품목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로봇청소기와 정수기, 헤드폰, 음식물처리기처럼 특정 용도에 집중한 시장에서는 전문 브랜드가 두 회사를 밀어내고 앞자리를 차지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에 어떤 가전 브랜드를 추천하는지 물어본 결과에서도 비슷한 구도가 나타났다.
21일 에이아이빅스랩이 가전·전자제품 8개 품목 182개 브랜드를 대상으로 AI 브랜드 경쟁력 지수(AIBIX)를 분석한 결과 세탁기·건조기·공기청정기·무선청소기 등 4개 품목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나머지 4개는 달랐다. 렌탈 정수기에서는 코웨이, 로봇청소기는 로보락, 무선이어폰·헤드폰은 소니, 음식물처리기는 미닉스가 각각 1위에 올랐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4일까지 챗GPT와 제미나이, 퍼플렉시티, 클로드의 한국어 답변을 분석한 결과다. AI 답변에서 브랜드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고 추천·인용되는지를 수치화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쟁이 가장 뚜렷한 곳은 전통 생활가전이다.
세탁기에서는 LG전자가 82.6점으로 삼성전자 68.6점을 14점 앞섰다. 챗GPT·제미나이·퍼플렉시티·클로드 모두 LG전자를 가장 높게 평가했다.
건조기도 LG전자가 74.5점으로 삼성전자 68.1점을 웃돌았다. 공기청정기는 반대로 삼성전자가 72.3점으로 LG전자 70.8점을 1.5점 차로 앞섰다.
무선청소기는 두 회사가 69.5점으로 공동 1위였다.
실제 제품 시장에서도 두 회사는 AI와 결합한 프리미엄 생활가전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2026년형 비스포크 AI 콤보를 출시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세탁과 건조를 한 제품에서 해결하는 비스포크 AI 콤보의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보다 약 40% 늘었다. 올해 제품에는 건조 성능과 효율을 개선한 열교환기 시스템과 AI 기능을 강화한 빅스비 등을 적용했다.
LG전자도 트롬과 퓨리케어, 코드제로를 앞세워 맞서고 있다. 한국생산성본부의 2026년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 LG전자는 세탁기·건조기와 공기청정기, 로봇청소기·무선청소기 등 16개 업종에서 1위를 차지했다. 최근 3년 안에 제품을 구입해 6개월 이상 사용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다.
LG전자는 올해 최대 흡입력 320W의 코드제로 AI 오브제컬렉션 A9과 114㎡까지 대응하는 퓨리케어 AI 오브제컬렉션 360도 공기청정기 등 AI 생활가전 제품군도 확대했다.
종합가전 업체가 모든 분야에서 우위를 차지한 것은 아니다.
로봇청소기에서는 로보락이 79.2점으로 에코백스 54.7점을 24.5점 차로 앞섰다. 조사 대상 AI 4종 모두 로보락을 1위로 꼽았다. 답변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비중도 56.7%로 절반을 넘었다.
실제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에서도 로보락은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로보락은 지난 2월 2026년 플래그십 로봇청소기 S10 맥스V 울트라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당시 로보락 측은 한국을 기술과 소프트웨어에 대한 소비자 기대 수준이 높은 시장으로 평가하며 신제품과 오프라인 매장 확대, 보안 강화 등을 통해 국내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같은 달 2026년형 비스포크 AI 스팀을 내놨다. 투명한 액체까지 인식하는 AI 액체인식과 최대 45㎜ 문턱을 넘는 주행 기능을 적용했고, 6월에는 가격을 낮춘 일반형까지 추가하며 제품군을 넓혔다.
AI 추천에서 로보락이 크게 앞섰지만 국내 대형 가전업체도 제품군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어 경쟁은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다.
렌탈 정수기에서는 코웨이가 82.2점으로 LG전자 62.6점을 19.6점 차로 따돌렸다.
코웨이는 12개 분석 브랜드 가운데 유일하게 에이아이빅스랩의 최상위 등급인 AI Champion에 포함됐다.
코웨이가 오랜 기간 정수기 렌탈에 집중해 온 브랜드라는 점도 AI 답변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주력 제품 가운데 하나인 아이콘 프로는 직수 방식에 UV 살균, 100도 온수, 정량 출수 기능을 넣었다. 사용자가 자주 쓰는 출수량을 저장하거나 12개 레시피에 맞춰 온도와 물의 양을 설정하는 기능도 갖췄다.
무선이어폰·헤드폰에서는 소니가 72.5점으로 애플 61.5점을 11점 앞섰다.
소니는 프리미엄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WH-1000XM6를 중심으로 올해도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XM6의 여섯 번째 색상인 올리브 그레이를 국내에 출시했다. 이 제품은 12개 마이크와 노이즈 캔슬링 프로세서를 탑재했고 노이즈 캔슬링을 켠 상태에서 최대 30시간 재생할 수 있다.
이달 8일에는 가격 부담을 낮춘 데일리 무선 헤드폰 WH-CH730N과 WH-CH530도 추가했다. 프리미엄 제품뿐 아니라 중저가 제품까지 선택지를 넓히는 전략이다.
음식물처리기에서는 중견·중소 가전 브랜드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미닉스가 68.8점으로 쿠쿠 63.5점을 제치고 AI 종합 1위를 차지했다.
미닉스는 실제 판매 시장에서도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앳홈에 따르면 시장조사업체 닐슨아이큐코리아가 집계한 2025년 국내 온·오프라인 음식물처리기 판매량에서 미닉스는 3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대표 제품 더 플렌더의 누적 판매량은 지난 6월 기준 55만대를 넘어섰다.
1인 가구도 파고들었다.
미닉스는 지난 5월 폭 17㎝, 용량 1.5L의 더 플렌더 mini를 내놨다. 회사 측에 따르면 출시 당시 라이브 방송에서 한 시간 만에 1700대가 팔렸다. 8월에는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가전 매장에도 입점하는 등 온라인 중심이던 판매망을 오프라인으로 넓히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질문을 조금만 바꿔도 AI가 가장 먼저 추천하는 브랜드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로봇청소기 일반 질문에서는 로보락의 첫 언급 비중이 56.7%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원룸·작은 집이라는 조건을 붙이자 샤오미가 50%로 1위가 됐다.
공기청정기도 종합 점수에서는 삼성전자가 가장 높았지만 미세먼지 제거와 거실용 대용량 제품을 물었을 때는 LG전자의 첫 언급 비중이 66.7%로 올라갔다.
음식물처리기에서도 비슷했다. 냄새 없는 제품을 요청하자 종합 3위인 스마트카라가 58.3%로 가장 먼저 등장했다. 종합 1위 미닉스는 8.3%였다. 반대로 1인 가구·원룸 조건을 넣으면 미닉스가 66.7%로 다시 선두에 섰다.
정수기도 일반적인 추천에서는 코웨이가 69.2%로 압도적이었지만 렌탈료가 저렴한 제품이라는 조건을 붙이자 코웨이·교원웰스·SK매직이 각각 25%로 같아졌다.
결국 생성형 AI 시대의 브랜드 경쟁은 단순히 이름이 많이 알려졌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셈이다. 소비자가 어떤 용도와 가격, 주거 형태를 입력하느냐에 따라 추천 순서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이번 AIBIX 조사는 어디까지나 특정 기간 생성형 AI 답변에 나타난 브랜드 노출과 추천 정도를 분석한 결과다. 실제 매출이나 시장점유율, 제품 성능 또는 전체 소비자의 선호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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