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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보다 먼저 세상을 움직였다”…한국마사회, 4000년 인류 문명 바꾼 ‘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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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영 기자 kjykj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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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7월 11일 ‘세계 말의 날’ 지정…6080만 마리 여전히 인류와 공존
전쟁·농업·스포츠·치유까지…4000년 이어온 가장 오래된 동반자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가 가진 가장 강력한 ‘엔진’은 말이었다. 사람보다 빠르게 대륙을 누비고, 전쟁의 승패를 갈랐으며, 농사를 짓고 물자를 실어 나르며 문명의 속도를 바꿨다. 인류와 약 4000년을 함께 달려온 말의 가치를 국제사회가 다시 조명하고 있다.

한국마사회(회장 우희종) 장수목장에서 말이 풀을 뜯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한국마사회(회장 우희종) 장수목장에서 말이 풀을 뜯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유엔 총회는 지난해 6월3일 결의안을 채택해 매년 7월11일을 ‘세계 말의 날(World Horse Day)’로 지정했다. 단순히 말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동물복지와 지속 가능한 공존의 가치를 확산하자는 취지다.

 

인류와 말의 인연은 약 4000년 전 유라시아 초원에서 시작됐다. 최근 고대 말 유전체 연구에 따르면 현대 말은 당시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뒤 불과 수백 년 만에 유럽과 아시아, 중동 등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말은 사람을 더 멀리 이동하게 했고, 수레를 끌어 교역을 활성화했으며, 농경과 통신, 군사력의 혁신을 이끌었다. 철도와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은 인류 문명을 움직인 가장 빠르고 강력한 동력이었다.

 

말은 세계 곳곳에서 각기 다른 문화를 꽃피웠다. 몽골에서는 유목 생활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고, 아라비아반도에서는 뛰어난 지구력과 아름다움을 갖춘 아라비안 품종이 탄생했다. 이 혈통은 영국에서 서러브레드로 발전하며 현대 경마 산업의 기반이 됐다. 북미에서는 유럽에서 건너온 말이 카우보이 문화와 원주민의 삶을 바꿔놓았다.

 

우리나라 역시 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를 지녔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말을 타고 사냥하는 기마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고, 조선시대에는 전국의 역참을 통해 말을 이용한 교통·통신 체계가 운영됐다. 제주 조랑말은 오늘날까지 고유 혈통을 유지하며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오늘날에도 말은 여전히 인류 곁에서 살아간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에는 약 6080만 마리의 말이 사육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약 241만 마리의 말과 포니가 6만3000여 개 농장에서 길러지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는 약 700만 마리의 말이 스포츠·관광·사육 산업을 중심으로 약 80만 개의 일자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몽골은 인구보다 많은 약 340만 마리의 말을 보유한 대표적인 말 문화 국가다.

 

말과 당나귀, 노새 등 사역동물의 존재감은 개발도상국에서 더욱 크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와 FAO에 따르면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서는 약 1억1200만 마리의 사역동물이 약 6억 명의 생계를 지탱하고 있다. 이들은 물과 식량을 운반하고 농업과 이동을 지원하며 지역사회의 일상을 떠받치는 핵심 노동력이다.

 

한국마사회(회장 우희종) 장수목장에서 말이 풀을 뜯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한국마사회(회장 우희종) 장수목장에서 말이 풀을 뜯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반면 말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계화와 도시화가 확산되면서 역할을 잃은 말들이 방치되거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과도한 노동과 열악한 사육 환경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된다. 여기에 기후변화까지 겹쳤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을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이상 높아진 첫해로 기록했으며, 폭염은 말의 열 스트레스와 질병 위험을 높이는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국제사회는 동물복지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제 승마대회와 경마 현장에서는 폭염 대응 매뉴얼과 냉각시설을 확대하고 있으며, 은퇴 경주마 보호와 복지 향상 프로그램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한국마사회(회장 우희종)를 비롯한 관련 기관들이 은퇴 경주마 복지와 말 보호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7월11일 렛츠런파크 서울에서는 ‘세계 말의 날 기념경주’도 열린다.

 

‘세계 말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인간과 함께 문명을 일구고 삶을 바꿔온 동반자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자는 국제사회의 약속이다. 자동차와 비행기가 세상의 속도를 바꿨지만, 그 이전 인류 문명의 출발선에는 언제나 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말은 농업과 스포츠, 관광, 치유와 정서적 교감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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