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만 좋으면 팔리던 시대가 지나고 있다. 최근 가전업계에서는 제품을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와 만족감을 앞세운 제품이 늘고 있다. 밥을 짓고, 향을 채우고, 식물을 키우고, 잠들기 전 시간을 정리하는 일까지 가전의 영역이 넓어지는 흐름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사례는 쿠첸의 ‘표정 있는 밥솥’이다. 이 제품은 디스플레이에 감성 인터페이스를 적용해 밥솥 상태를 표정으로 알려준다. 취사, 보온, 대기, 세척 등 모드에 따라 표정이 달라져 사용자가 현재 상태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취사가 끝나면 웃는 표정이 나타난다. 장시간 보온할 때는 6시간 단위로 표정이 달라져 보온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대기 상태나 절전 모드에서는 잠을 자는 듯한 표정으로 바뀐다. 밥솥이 단순히 “밥이 됐다”고 알려주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와 짧게 반응을 주고받는 듯한 느낌을 주는 셈이다.
이 제품은 쿠첸의 브레인, 그레인 광고에서 선보인 ‘표정 짓는 밥솥’ 콘셉트가 실제 제품으로 이어진 사례다. 광고 속 캐릭터적 요소에 소비자 반응이 이어지자 이를 제품 인터페이스로 구현했다. 기능 면에서는 듀얼프레셔 시스템을 적용해 찰진밥과 고슬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 쾌속 취사와 냉동보관밥 기능도 넣었다.
공간 분위기를 바꾸는 가전도 늘고 있다. 제니퍼룸의 ‘아로마 사운드 디퓨저 타워’는 향과 음악, 조명을 한 제품에 결합했다. 3단계 발향 강도 조절 기능을 통해 공간 크기나 사용 환경에 맞춰 향의 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스마트 타이머 기능으로 사용 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
무드등 기능도 더했다. 4가지 색상의 조명을 적용해 침실, 거실, 서재 등 공간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활용할 수 있다. 디퓨저가 단순히 향을 퍼뜨리는 물건이 아니라, 집 안의 공기와 조도, 소리를 함께 조절하는 오브제로 쓰이는 구조다.
새로운 취미를 제안하는 가전도 있다. LG전자의 ‘틔운 미니’는 식물을 기르는 과정을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 식물생활가전이다. 씨앗키트를 넣고 물과 영양제를 보충하면 식물의 성장 과정을 실내에서 지켜볼 수 있다.
초보자도 접근하기 쉽도록 관리 기능을 넣은 점이 특징이다. 재배 상태에서는 조명 LED와 온도 상태 LED가 켜지고, 물이 부족하면 LED 알림이 작동한다. LG전자에 따르면 틔운 미니는 메리골드 등 꽃 씨앗키트 수요가 높았고, 이후 허브 등으로 씨앗키트 선택지를 넓혔다. 식물을 키우는 일이 번거로운 관리가 아니라 매일 변화를 확인하는 취미가 되도록 만든 제품이다.
휴식과 몰입을 겨냥한 제품도 등장했다. 발뮤다의 ‘더 클락’은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에 그치지 않는다. 알람, 집중을 돕는 타이머, 휴식용 사운드 기능을 함께 제공한다. ‘릴랙스 타임’ 모드에서는 빗소리, 강물 소리, 벽난로 소리 등 오리지널 음원을 재생해 사용자가 쉬는 시간을 보다 차분하게 보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시간 표시 방식도 다르다. 전통적인 시침과 분침 대신 빛으로 시간을 표현한다. 전용 앱 ‘BALMUDA Connect’와 연동하면 알람 시간, 모드별 사운드, 다이얼의 빛 표현을 세밀하게 설정할 수 있다. 시계가 시간을 확인하는 기기에서 하루의 리듬을 조절하는 도구로 확장된 셈이다.
이런 제품들의 공통점은 기능 자체보다 사용자가 느끼는 감각을 전면에 둔다는 점이다. 밥솥은 표정으로 반응하고, 디퓨저는 향과 조명으로 공간을 바꾸며, 식물재배기는 새로운 취미를 만든다. 시계는 시간을 보여주는 대신 쉬고 집중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가전업계의 경쟁축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출력, 용량, 속도, 에너지 효율 같은 성능 지표가 중심이었다. 이제는 제품을 사용할 때 어떤 기분을 주는지, 집 안에서 어떤 분위기를 만드는지, 사용자의 일상에 어떤 습관을 더하는지가 차별화 요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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