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현장 실수가 아니라 투표용지 인쇄 단계부터 위기 대응, 보고 체계, 투표 관리, 개표 절차에 이르기까지 선거관리위원회 시스템 전반의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위원회는 19일 최종 결과 발표를 통해 선관위의 부실한 대응으로 국민 참정권이 어떻게 훼손됐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오전부터 울린 경고음…안일 대응이 부른 투표 중단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이미 선거 당일 오전 무렵부터 예고됐다. 송파구선관위 직원은 오전 11시40분쯤 서울시선관위에 추가 투표용지 사용을 위한 일련번호를 문의했지만, 상급기관은 이를 투표용지 부족의 전조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정오쯤 송파구선관위 간사와 서기가 모인 단체 채팅방에 투표용지부족 대처방안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서울시선관위는 여전히 이를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후 들어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서울시선관위는 오후 1시49분과 3시5분쯤 예비용 무번호 투표용지에 각각 500매씩 총 1000매의 일련번호를 부여했지만, 이를 전국 선거 상황을 총괄하는 중앙선관위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안이한 대처가 송파구 소재 투표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투표가 중단되는 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이 진상규명위 판단이다.
가락2동, 잠실4동, 문정2동 등 송파구 각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민원이 빗발쳤고,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되는 투표소들이 발생했다. 3시35분쯤 잠실4동 간사는 ‘잠실4동 5투(투표소 의미) 잔여 수량 100매 미만입니다. 빠른 지원 바랍니다’라고 보고했고, 4시7분쯤 가락2동 서기는 ‘가락2동 3투 언제 출발하나요. 10장 남았습니다’라며 긴박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적기 대응이 안 되면서 4시11분쯤 잠실4동 5투표소의 투표 중단을 시작으로 4시12분쯤에는 가락2동 3투표소가, 4시38분쯤 문정2동 2투표소의 투표가 잇따라 멈췄다. 급기야 잠실7동 2투표소에서는 대기 중인 유권자들에게 번호표를 배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진상규명위는 “만일 서울시선관위가 1000매 일련번호를 부여할 당시 투표용지 부족을 예상하여 적절한 지휘체계를 가동하고 및 신속한 대응을 하였더라면 이러한 사태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투표도 안 끝났는데 개표 시작…드러난 총체적 관리 부실
현장의 혼란이 커지는 와중에도 보고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서울시선관위는 송파구선관위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추가 일련번호를 부여했음에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고, 중앙선관위에도 즉시 보고하지 않았다. 중앙선관위 역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자체 보고가 아닌 민원인의 항의 전화로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처음 인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현장 대응 과정에서도 각종 규정 위반이 확인됐다. 추가 투표용지는 봉인 절차 없이 종이가방이나 지퍼백 등에 담겨 운송됐고, 선관위 직원뿐 아니라 사무보조원과 사회복무요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이 배송에 투입됐다. 일부 투표소는 직접 선관위를 찾아가 투표용지를 받아오는 일까지 벌어졌으며, 인수인계 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진상규명위는 또 투표시간 연장 결정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선관위 상임위원, 사무처장, 선거과장은 잠실7동 2투표소에서 대기표를 받은 선거인 중 미투표한 선거인이 오후 10시까지 투표할 수 있도록 투표마감 시각을 연장 결정 한 뒤 위원장에게는 보고했으나, 투표 시각 연장 결정 과정에 있어 중앙위원회에 보고하거나 논의 없이 결정했다. 이미 각종 언론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표하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투표가 완전히 종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개표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송파구선관위는 오후 7시27분 개표 개시를 선언했지만, 잠실7동 2투표소에서는 여전히 투표가 진행 중이었다. 진상규명위는 이를 선거관리시스템의 총체적 부실로 결론내리고 책임소재에 따라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위철환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대행(선거일 당시 상임위원), 허철훈 전 사무총장 등 12명에 대한 수사 의뢰를 선관위에 권고했다.
조현욱 진상규명위 위원장은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고, 상급위원회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며 “보고 체계 마비 및 선거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 상태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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