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욕실서 살아남는 녹농균…상처·귀 건강에도 부담
아까운 마지막 한 방울, 몸 대신 양말·운동복 세탁 활용
샤워기 아래서 샴푸 통을 거꾸로 들고 한참 흔든다. 그래도 잘 나오지 않으면 물을 조금 붓고 다시 흔든다. 묽어진 거품이 흘러나오면 마지막까지 썼다는 생각에 괜히 뿌듯하다. 욕실에서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물을 섞어 두고 쓰는 습관은 위생상 좋지 않다. 샴푸는 원래 물로 헹궈내는 제품이지만, 통 안에 물이 들어간 채 며칠씩 남아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남은 샴푸에 물을 붓는 순간 보존제 농도는 낮아지고, 습한 욕실 환경까지 겹치면 용기 안은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상태가 될 수 있다.
◆물 섞는 순간 흐트러지는 균형
샴푸는 제품이 출시될 때 보존제 농도와 산도, 점도 등이 맞춰져 나온다. 미생물이 쉽게 자라지 않도록 설계된 상태다. 빈 통에 물을 부으면 이 균형이 깨질 수 있다. 남은 샴푸 양은 적은데 물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보존제 농도도 함께 낮아지기 때문이다.
욕실 환경도 문제다. 샤워 뒤 습기가 오래 남고, 뚜껑과 펌프 입구에는 물방울과 손때가 묻기 쉽다. 여기에 물을 넣고 흔들면 입구 주변에 있던 오염물이 용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희석된 샴푸를 며칠씩 욕실에 두고 쓰면 세균 오염 가능성은 더 커진다.
용기 위생의 위험을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국제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올로지오픈’에 2023년 실린 독일 라인발 응용과학대 연구진의 논문이다.
연구진이 독일 호텔 객실에서 액체비누 디스펜서 104개를 수거해 분석한 결과, 다시 채워 쓰는 리필형 펌프 디스펜서의 70.2%에서 세균 오염이 확인됐다. 한 번 쓰고 교체하는 비리필형 누름식 디스펜서의 오염률은 10.6%였다.
이 연구가 샴푸 통 자체를 놓고 진행된 실험은 아니다. 다만 물기와 세정제 찌꺼기가 남은 용기 안에서도 세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은 확인됐다. 연구진이 눈여겨본 부분은 펌프 헤드였다. 내용물보다 용기 입구와 펌프 안쪽이 오히려 세균이 드나드는 길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습한 욕실에서 버티는 녹농균
주의해야 할 균 중 하나는 녹농균이다. 녹농균은 물과 토양 등 주변 환경에 널리 존재하는 세균이다. 물기가 남은 용기나 배수구 주변처럼 습한 곳에서도 버틸 수 있다.
건강한 성인이라면 물 탄 샴푸를 한두 번 썼다고 바로 문제가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피에 상처가 있거나 피부가 예민한 사람,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오염된 샴푸가 피부에 닿으면 가려움이나 발진이 생길 수 있고, 심하면 모낭염 같은 염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귀도 예외가 아니다. 샴푸 물이든 일반 목욕물이든 귀 안에 물기가 오래 남는 것 자체가 위험 요인이다. 외이도는 귀 입구에서 고막까지 이어지는 좁은 통로다. 이곳이 습한 상태로 유지되면 세균이나 곰팡이가 자라기 쉽다. 질병관리청은 녹농균을 급성 외이도염의 대표적인 원인균으로 설명한다.
귀 통증이나 가려움, 먹먹함이 생기면 진료를 받는 게 좋다. 물 탄 샴푸를 한 번 썼다고 곧바로 큰 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도는 피부 상태와 면역 상태, 보관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당뇨병 환자, 면역저하자, 영유아, 피부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물을 섞어 둔 샴푸 사용을 피하는 편이 낫다.
당뇨병이나 면역저하 상태에서는 외이도염이 드물게 주변 조직과 뼈까지 번지는 악성 외이도염으로 악화할 수 있어 더 주의해야 한다. 부득이하게 물을 넣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쓰고 버려야 한다. 며칠씩 두고 쓰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아깝다면 몸보다 세탁에 활용
남은 샴푸가 아깝다면 몸에 쓰기보다 세탁에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샴푸에는 피지와 땀, 헤어 제품 잔여물을 씻어내기 위한 계면활성제가 들어 있다. 이 성분은 양말, 운동복, 베갯잇처럼 땀과 기름기가 묻기 쉬운 빨랫감에도 활용할 수 있다.
방법도 복잡하지 않다. 따뜻한 물에 샴푸를 조금 풀고 양말이나 운동복을 담근 뒤 손으로 가볍게 문지르면 된다. 10~20분 정도 불린 다음 깨끗한 물로 충분히 헹군다.
이후 세탁기에서 한 번 더 헹굼·탈수를 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말리면 된다. 땀 냄새가 밴 양말이나 운동복, 피지가 묻기 쉬운 베갯잇처럼 먼저 손빨래가 필요한 빨랫감에 활용하기 좋다.
물론 모든 옷에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크, 울, 기능성 소재, 고가 의류에는 피하는 편이 안전하다. 색이 진한 옷은 안쪽에 먼저 묻혀 변색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향이 강한 샴푸는 세탁 후 냄새가 남을 수 있어 소량만 써야 한다.
샴푸 한 방울까지 아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다. 그렇다고 물을 섞은 샴푸를 욕실에 며칠씩 두고 쓰는 건 다른 문제다. 절약보다 위생을 먼저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
마지막까지 쓰고 싶다면 물을 붓기보다 통을 거꾸로 세워두거나 바닥을 가볍게 두드려 나오는 만큼만 쓰는 편이 낫다. 그래도 남은 양이 아깝다면 몸에 쓰지 말고 양말이나 운동복 세탁에 활용하는 게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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