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여의도 물빛광장은 해가 기우는 동안 조금씩 음악회장으로 바뀌어갔다. 일찍 도착한 관객들이 무대 앞 의자에 차례로 앉았고, 그 주변으로는 돗자리와 간이의자를 펼친 시민들이 자리를 잡았다. 공연장을 찾겠다고 마음먹고 온 사람도 있었겠지만, 산책길에 발걸음을 멈춘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야외 음악회의 매력은 바로 그런 우연성에 있다. 클래식이 특별한 약속을 한 사람들만의 시간이 아니라, 도시의 저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풍경이 되는 데 있다.
이날 열린 ‘서울시향 강변음악회’는 지휘자 김선욱이 이끄는 서울시향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의 협연으로 꾸며졌다.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1막 전주곡은 첫 음부터 광장의 공기를 단단히 그러모았고, 이어진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김서현은 짙은 서정과 광휘 사이를 무리 없이 오가며 갔다. ‘로엔그린’ 1막 전주곡이 그 열기를 고요히 가라앉혀 숨을 고르게 하자, 선우예권은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또렷한 타건과 탄력 있는 호흡으로 끌고 갔다. 마지막 ‘탄호이저’ 서곡은 축제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야외라는 이유로 가벼운 소품에 머물지도, 그렇다고 무겁게 닫히지도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야외 클래식 공연은 실내 공연장을 대신하는 자리가 아니다. 홀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교함과 집중력은 분명 따로 있다. 그 대신 야외에는 홀에서 누리기 어려운 감각이 있다. 음악이 도시의 풍경과 함께 들린다는 것이다. 자동차 소리와 강바람, 사람들의 자잘한 움직임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자리에서 오케스트라는 오히려 더 넓은 배경을 얻는다. 완벽한 침묵 대신 함께 머무는 공기가 생기고, 청중은 음악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이 사는 도시를 새삼 낯설게 바라본다. 음악은 그 순간 도시를 덮는 장식이 아니라, 도시의 결을 잠시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
해외의 대표적인 야외 음악회들이 하나의 도시 문화로 자리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빈 필하모닉의 여름밤 콘서트는 궁전 정원을 시민의 객석으로 열어젖힌다. 시카고의 파크 콘서트는 빌딩 숲과 미시간 호수 사이의 잔디밭을 퇴근길의 음악회장으로 바꾼다. 중요한 것은 오케스트라가 홀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음악이 장소와 만나고, 그 장소가 다시 음악을 통해 도시의 고유한 문화 체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좋은 야외 음악회는 그래서 배경을 빌리는 행사가 아니라, 그 장소가 지닌 시간과 움직임을 음악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에 가깝다.
이번 강변음악회가 특별했던 것은 한강이라는 장소 덕분이다. 산책하는 연인, 돗자리를 편 가족, 퇴근길의 직장인까지, 단지 같은 공간에 머물 뿐 저마다의 일상으로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날 저녁, 음악은 이들을 잠시 하나의 시간 안으로 불러들였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선율에 귀 기울이고, 같은 대목에서 박수를 치며 같은 밤공기를 나누었다. 우연한 공간의 점유가 온전한 시간의 공유로 바뀐 것이다. 거대한 익명의 도시 속에서 우리가 음악을 통해 느슨하게 이어져 있음을 실감한 순간, 야외 음악회는 단순한 무료 공연 그 이상이 된다.
앙코르와 함께 쏘아 올린 불꽃이 어둠 속으로 스러지고, 무대 조명이 꺼지자 광장에는 다시 도시의 소음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조명이 걷혔다고 해서 그 밤이 남긴 울림까지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돗자리를 접고, 간이의자를 들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향으로 흩어졌지만, 그들의 걸음 어딘가에는 방금 지나온 무대의 여운이 희미하게 묻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야외 음악회의 진짜 끝은 마지막 박수 뒤가 아니라, 사람들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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