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0일 이희호 여사 타계 당시 북한의 답방 형식 조문외교 성사 여부에 이목이 쏠렸다. 고인은 남편인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2000년 6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2011년 12월에는 김 위원장 조문 사절로 방북해 상주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두 손을 붙잡고 애도를 표한 바 있다. 북한도 2009년 8월 DJ 서거 때 김기남 노동당 선전 담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을 비롯한 고위급 조문단 6명을 보냈다.
북한은 조문단 파견 대신 2019년 6월 12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김정은 위원장 명의의 조화와 조의문을 전했다. 당시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직접 문재인정부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호 통일부 차관,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에게 조의문 등을 전달했고,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도 배석했다. 그즈음 남북 관계는 냉랭했다. 2019년 2월 북·미 정상 간 ‘하노이 노딜’ 여파로 북한은 4월 이후 일체의 접촉을 끊었다. 이 여사 장례식을 계기로 2018년 3차례나 남북 정상회담을 이끈 주역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6월 30일 남·북·미 정상 간 판문점 ‘깜짝’ 회동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닐 터다.
역사적 첫 남북 정상회담의 주역은 DJ가 아닌 김영삼(YS) 전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뻔했었다. 미국의 중재로 마련된 정상회담을 불과 보름가량 앞둔 1994년 7월 8일 김일성 북한 주석이 숨지자 YS는 반북 정서가 커졌다고 판단해 민간 차원의 조문을 금지하고 전군엔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당시 야당의 이부영 의원이 조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여권을 중심으로 비난이 쏟아졌고, 남북 관계는 북핵 갈등으로 DJ 집권 전까지 고조된 긴장감이 이어졌다.
북한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발인이 어제 엄수됐다. 김영남은 1998년 김정일 정권 공식 출범 후 21년간 북 헌법상 대외적으로 국가수반이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발표한 조의문조차 북한에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관계 단절로 조문단 구성을 위한 공개적인 논의는 언감생심이다. 남북 핫라인마저 불통인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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