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인재 유출의 심각성이 다시 한번 지적되었다. 글로벌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각국이 인재 유치전에 나서고 있고, 한국이 ‘인재 유출국’으로 불리는 현실에 언론의 비판과 대정부 대책 요구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인재 유출의 대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세워야 하는 주체가 과연 정부일까? 인재의 ‘유출’은 인재가 더 좋은 환경과 처우를 제공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나아가 국내에서 해외 글로벌 빅테크로의 이동은 인재가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고 더 큰 성장을 도모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인재 경쟁에서 밀린 수요처들, 대학, 연구소, 기업이 경쟁기관 대비 어떻게 자체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인가를 가장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 기업이 글로벌 빅테크의 파격적 처우와 직접 경쟁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분명하다. 정부의 개입 여지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인재가 이동을 결정하는 요인은 단순한 금전적 보상만이 아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곳이 연구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곳인가이다. 특히 30~40대 젊은 연구원들은 해당 조직에서 어떤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성장 비전’을 중시한다. 아울러 우수한 인프라와 동료,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문화가 어우러진 ‘성장 환경’이 인재를 붙잡는 핵심이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인재를 지키고, 미래의 인재를 유치하며, 언젠가 돌아올 인재를 위한 토대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나아가 인재 유출을 무조건 실패로 볼 필요도 없다. 우리가 키운 인재를 세계 최고 기관들이 앞다투어 영입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인재 양성 역량을 입증하는 것이다. 인재는 생태계 안에서 끊임없이 순환한다. 더 넓은 무대로 인재를 보낼 수 있는 역량과 그들이 다시 돌아와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국가 경쟁력이다.
인재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각 기관은 성장 비전과 환경을 구축하고, 정부는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연구중심대학과 출연(연)은 연구 인프라 확충과 연구지원 인력 확대, 행정 절차 간소화를 추진해야 하고 기업은 연구자의 역량이 축적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처우 개선에 힘써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노력을 연구개발(R&D) 지원, 블록펀딩, 인프라 구축, 세제 혜택, 규제 완화 등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동안 인구 감소와 인재 유출에 대응하는 정부의 인재 정책은 주로 ‘유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파격적 처우와 비자 개선 등 유치 정책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인재가 머물 생태계가 척박하면, 유입된 인재마저 다시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생태계 내 연구 문화와 같은 소프트웨어적 역량이 선진화되는 과정은 십수 년이 걸리는 장기전이다. 그러나 열매를 따지 못하더라도, 씨를 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인재가 자라고 순환할 수 있는 생태계 선진화의 씨앗을 지금 뿌려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인재강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박수경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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