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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차청인 소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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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03 23:05:29 수정 : 2025-11-03 2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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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훈
면역력이 사라지면 피는 꽃, 엄마는 펄펄 끓는 나를 그 먼 곳까지 어떻게 데리고 다녔을까 비형간염과 수두를 저멀리 두고 떠나올 수 있게 했던 그곳이 문을 닫은 건 소아과 병원들이 사라지기 훨씬 이전이었다 간판 이름만 오래 남았던 의사 선생님은 오래전 죽고, 그 소식을 전했던 분도 얼마 전 죽고, 이제 그런 소식마저 끊긴 영도에는 사진처럼 기억만 생생한 채 찾아가볼 이유도 용기도 없는 곳들이 는다 수은 체온계를 물고 대기실 벽의 헤파박스, 라는 분홍 문구를 괜히 따라 읽게 되던 거기는 내가 처음으로 아픔을 배운 곳이었다 (후략)

내가 처음으로 아픔을 배운 곳은 어디였을까. ○○○ 이비인후과, △△△ 소아과, ◇◇◇ 내과…. 소도시 구석 허름한 간판에 적힌 이름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시 속 병원처럼 나의 병원들도 어느새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더는 찾아볼 이유도 용기도 없지만, 한때의 기억만은 생생하다. 겁에 질려 한참을 울기도, 의연한 척 짐짓 주삿바늘을 쏘아보기도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추억. 그 시절의 증표처럼 콧등에는 조그만 수두 자국이 남았다. 내 얼굴에 난 흉터 하나에 몹시도 마음을 졸이던 한 사람의 표정 또한 깊이 간직한 채다.

 

이제 더는 소아과에서 아픔을 배우지 않는다. 한바탕 진을 빼고 병원 문을 나서면 나날이 새로운 아픔이 숙제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때 그 병원들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차마 가르쳐 줄 수 없었을지도. 수시로 맞닥뜨리는 삶의 비정함 앞에 이따금은 일곱 살처럼 소리내어 울고 싶지만, 지금은 어떤 손도 나를 달랠 수가 없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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