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심서 1.4조 재산분할 이끌어낸 비자금 카드 물거품…실체 규명 요구 남아
최태원 SK 회장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공개한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을 대법원이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향후 비자금 실체규명과 환수가 가능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시민단체들은 이 비자금과 관련해 노 관장 일가를 검찰·국세청에 고발한 상태다. 법조계에서는 대법 판결로 ‘비자금 카드’가 물거품이 됨에 따라 노 관장이 오히려 ‘제 발등을 찍었다’는 평이 나온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전날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서 재산 분할과 관련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노 관장 측이 지난해 2심에서 제시한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 SK 유입’을 재산분할의 근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항소심은 분할 대상인 재산이 총 4조115억1200만원이고 이 중 35%인 1조3808억원을 노 관장 몫으로 판단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이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에게 1990년대 초 건네져 SK그룹 성장의 종잣돈으로 쓰였다’는 노 관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분할 재산을 산정했다. 비자금 유입의 근거는 김옥숙 여사가 1990년대초 작성했다는 904억원 상당의 자금내역이 쓰인 ‘맡긴 돈’이란 제목의 메모였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 돈의 출처는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며 “노 전 대통령의 행위는 법적 보호 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 분할에서 노 관장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민법 746조를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300억원이 실제 SK에 흘러들었는지는 명확하게 판단하지 않은 채, 사실 규명과 별개로 불법 비자금을 노 관장의 기여로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항소심에서 꺼내든 ‘비자금 카드’가 무위로 돌아간 데 더해 노 관장은 정부와 사정당국의 비자금 실체 관련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수사’와 1997년 대법원 확정 판결로도 드러나지 않았던 새 비자금을 스스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과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은닉 비자금 실체규명과 환수를 촉구하며 노 관장 일가를 검찰, 국세청 등에 고발했다. 이들 단체는 군사정부 잔재 청산을 위해서라도 집권 시기 뇌물 등으로 부정축재한 자금이 후손의 부로 축적돼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시민단체의 고발 건을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에 배당하고 올해 4월부터 노 관장 일가의 금융자료를 분석하는 등 계좌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 처벌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자 국회에서는 공소시효, 당사자 생사 여부에 관계없이 부정축재한 범죄자금을 환수하는 ‘독립몰수제’ 도입법안이 여야 모두에서 발의됐다. 이와 관련해 임광현 국세청장은 16일 대법원 판단이 나온 직후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적의조치(법과 원칙에 따라 적절히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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