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출신인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은 지난 4월 초 대구 용계초등학교를 방문해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수업을 참관했다. 지역 언론은 ‘성공적 현장 안착’을 강조했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태블릿PC 속 화면만 터치하거나 이어폰을 낀 채 스크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학생 간 협업이나 교사와의 대화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라면 누구나 불편함을 느꼈을 장면이다.
기자 역시 수업이 아닌 장관과 교육감만 환하게 웃는 ‘기술 시연회’에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금까지 교사들은 AI 등 최신 기술은 없었지만 아이들과 서로 눈을 맞춰 질문하고 응답하며 수업을 해 왔다. 지금 대구의 교실이 이전과 달리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다.

대구의 AI교과서 도입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2025학년도 1학기 98.5%(458개교)에 이어 2학기에도 80.9%(376개교)로 전국 평균(1학기 기준 32.3%)을 크게 웃돌았다. 반면 경남은 0.59%(6개교)에 그쳐 사실상 도입을 중단한 상태다. 대부분 지역은 0∼13%대에 머물렀다. 부산은 2학기 채택률이 4%(25개교)로, 전 학기 대비 33.8%포인트 급락했다. 강원(-30%포인트), 경북(-28%포인트), 전북(-24.7%포인트)도 큰 폭으로 줄었다. AI교과서가 지난 8월 초·중등교육법 개정으로 법적 지위가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되면서 학교 현장 채택률이 절반가량 급감했기 때문이다.
학교별 AI교과서 도입 여부를 두고 교육청은 ‘권장’이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대구지역 일부 교원단체들은 계속 반발하고 있다. 학교별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교육청이 학교에 채택을 강압적으로 유도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한 높은 채택률의 이면에는 교사 실적 압박, 강제 연수 등 ‘보여주기식 행정’이 있었다고 꼬집으며 “성과만 앞세운 정책이 현장에 혼란과 불신만 남겼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는 “신청해 놓고 안 쓰면 된다”는 식의 강요와 회유가 있었다는 증언이 잇따른다.
높은 채택률에 비해 투자 대비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짐작된다. 대구교사노조는 1학기 동안 AI교과서를 꾸준히 수업에 활용한 교사는 23%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교사들은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실제 활용도가 낮은 이유로 AI교과서의 콘텐츠 일방성과 시스템 오류 등을 꼽았다.
하지만 AI교과서의 장점은 적지 않다. 학습 수준에 따른 맞춤형 콘텐츠, 실시간 피드백, 자기주도 학습 강화, 사교육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방 등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같은 품질의 학습 콘텐츠를 제공받을 수 있어 교육 격차를 해소할 것이라는 기대도 커 보인다.
‘교육은 백년대계’란 말이 있다. AI교과서로 인해 아이들이 실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나온다. 현재는 AI교과서가 완벽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보완적 교육 도구로 활용하면서 문제점을 차츰 개선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기자 생각이다. 정부의 교과서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어서다. 교육당국의 합리적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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