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이진숙·냉부해’ 두 단어를 두고 샅바싸움을 벌인 정치권이 13일부터 시작되는 국정 감사를 앞두고 전열 정비에 나섰다. 9일 정치권에서는 한미 관세협상 해결을 위해 여야가 협력해야 한다며 ‘한 목소리’가 나왔다. 관세협상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마저 수입 철강 제품의 관세율을 25%→50%로 올리고 미국 수입시장에서 올해 1∼7월 한국의 점유율이 10위로 세 계단이나 하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위기감이 커진 데 따른 행보로 보인다. 다만 대미 협상 태도를 두고는 정당마다 온도차가 존재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9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관세협상 해결을 위해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장 대표는 “가장 시급한 문제인 관세협상을 함께 해결하자”며 “여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국무총리, 통상 관련 장관이 참여하는 관세협상 여야정 협의체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도 같은 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 “관세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여야 대표가 참여하는 초당적 회의체인 ‘여야 비상경제 안보회의’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조 위원장은 “지금은 국익이 최상의 가치로, 여야는 국익으로 하나가 돼서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대미 협상 이슈를 대하는 자세는 다소 엇갈렸다. 국민의힘 장 대표는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위해선 관세협상의 상세한 내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정부·여당이 지금까지 관세협상 내용을 공유하면 지금의 위기를 넘는 데 국민의힘은 함께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대미 협상 관련 부정적 기류만 전해지는 가운데 정부가 야당에 협상 경과를 공유하지 않는 상황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장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 앞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관세협상 관련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과 관련 “이 대통령은 초유의 디지털 대란에서 적반하장으로 저와 당을 고발하고, 수습책임을 공무원에게 맡긴 채 예능 카메라에 섰다”며 “진실을 덮기 위해 위협과 협박을 가하고, 위기를 감추기 위해 선동·왜곡을 일삼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출연한 프로그램명에 빗대 “냉장고가 아니라 관세를 부탁한다”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 정권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때까지 관세협상을 타결하겠다면서 뒤로는 모든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반미 선동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반면 조국 위원장은 관세협상과 관련해 대미 비판에 힘을 실었다. 그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강력한 항의를 표시하는 국회 결의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다시 촉구한다”며 “미국의 태도는 '협상'이 아니라 '협박'”이라고 일갈했다. 조 위원장은 “일방적이고 부당한 관세 철회와 선불 요구 거부를 명확히 하고, 평등한 한미동맹을 벗어나는 어떤 행위도 수용할 수 없음을 경고하자”고 제안했다. 조 위원장은 이날 서왕진 원내대표 등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당한 관세 압박을 철회하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한미 관세협상은 ‘3500억달러 대미 투자펀드’의 세부안을 두고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추석 연휴인 지난 4일(현지시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미국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났으나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선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3주 앞으로 다가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돌파구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나왔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일치기’나 1박 2일 일정으로 한미·미중 정상회담을 소화한 뒤 떠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 불확실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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