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트럼프 진영 일각서 음모론
언론도 정치적 분노 등에 주목
미국 사회 골 깊은 반목 보여줘
간밤 워싱턴에서 저녁 약속이 있어 밤늦게 있다가, 패러것웨스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버지니아 집으로 오는 길에 평소보다 더 주위를 둘러보게 됐다. 9일 전 그 근처에서 아프가니스탄 출신 라흐마눌라 라칸왈(29)이 웨스트버지니아주 소속 주 방위군 세라 벡스트롬(20), 앤드루 울프(24)를 총격했다. 현장엔 별다른 표시도 없었고, 평소보다 더 고요한 겨울밤이었다.
벡스트롬은 사망했고, 울프는 여전히 중태다. 스무살 벡스트롬은 대부분이 산악지대인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작은 마을 서머스빌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주 방위대에 입대했다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주 방위군 배치 정책으로 워싱턴으로 차출됐다. 당시 오후 2시15분쯤 총격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데, 기자는 패러것웨스트 동쪽의 메트로센터역 근처에 있다가 패러것웨스트 주변을 지나던 중 사건 소식을 들었다. 백악관에서 차로 5분 남짓, 워싱턴 서쪽에 위치한 사건 현장은 평소에도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다. 가까운 곳에 한국 지상사들의 사무실도 많고, 범죄·사고가 간혹 보고되곤 하는 동쪽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대낮에 총기 사건이 난 것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난 현재 현장이 고요한 것과 달리 사건의 여파는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 직후 “모든 제3세계 국가로부터의 이주를 영구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미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국은 6월 이미 대통령 포고문으로 ‘우려국’으로 지정한 19개국으로부터의 이민을 영구적으로 중단한다고 알렸다. 정치적으로 하락세를 겪던 트럼프 대통령이 총격 사건을 계기로 반격의 고삐를 단단히 죈 모양새다. 현재 미 당국은 우려국을 30개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사건 직후 미 국무부는 용의자의 출신국인 아프가니스탄 출신자들의 비자 발급을 중단했는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을 도운 ‘협력자’도 포함이다. 용의자 라칸왈이 탈레반을 상대로 미 중앙정보국(CIA)이 조직한 대테러 부대 작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협력자’ 출신이었다. 미국을 도왔던 라칸왈이 범행을 저지른 동기에 대해선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는 그가 친민주당 색채가 강한 워싱턴주 출신이라는 점을 의식한 듯 “지역사회 영향으로 급진화(radicalized)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당국자가 섣불리 말하기엔 이른 얘기다. 2021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당시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를 하던(이후 현실이 됐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당시 이 ‘협력자’들은 미국으로의 망명 가능성이 열려 있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의 앞날도 불투명해진 것이다.
총격 사건과 관련해 온라인을 중심으로 반트럼프 진영 일각에선 음모론이 들끓었다. 구글 트렌드 검색을 근거로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워싱턴 지역에서 라칸왈의 이름 검색이 늘었다”며 “CIA가 (사건의) 배후에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온라인에 나돌았다. 이 같은 주장은 “이번 총격은 단순 테러나 개인 범죄가 아니라 더 큰 ‘계획된 내부 작전’으로, ‘CIA가 미국 내 반(反)이민 여론을 강화하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벌인 것’”이라는 음모론으로 연결된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구글 검색 급증이라는 데이터 자체가 불확실하다며 자체 점검 결과 뚜렷한 검색 급증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대부분의 미 언론도 이런 주장은 증거보다는 정황적 해석, 감정적 반응, 정치적 분노 등이 뒤섞인 경우가 많다는 데 힘을 싣고 있다.
미국의 양극화가 심각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수도 워싱턴의 백악관 한복판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 이후 각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론을박은 트럼프 행정부 첫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더욱더 골이 깊어진 미국 사회의 반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민, 총기, 양극화 등 미국의 ‘모순’의 키워드를 모두 품고 있는 워싱턴 총격 사건은 올해 벌어진 어떤 일들보다 미국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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