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포함해 동아시아인의 생활은 물론 정신문화를 지배하는 요소 중 하나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四季)다. 학문, 문학, 서화, 음악 등에뿐만 아니라 삶의 자세, 사생관(死生觀)에 깊은 영향을 줬다. 지조·절개를 상징하는 매란국죽도 결국 사계와 연관 있다. 남북이나 일본의 교과서는 뚜렷한 사계절을 나라의 특징으로 삼는다. 한·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래식 곡이 비발디의 사계라는 것이 우연은 아닌 듯하다.
기후 변화로 봄·가을이 짧아지면서 동아시아인의 계절관(觀)도 바뀌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발표된 신어·유행어 대상 톱 10에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겠습니다’(대상), 트럼프 관세, 전후 80년 등과 함께 ‘이계(二季)’가 선정됐다. 다치바나 요시히로(立花義裕) 미에(三重)대 대학원 교수 등이 관측 데이터를 통해 봄·가을이 사라지고 여름·겨울만 남는 이계화를 과학적으로 규명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연구에 따르면 1982∼2023년 일본의 여름이 약 3주 길어지고 봄·가을이 짧아졌다. “덥다, 더워”가 인사말이 되고, 춘추복 실종 등 이계화에 따른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배경이 실증적으로 포착된 것이다.
2021년 한국 기상청은 서울 등 6곳의 1912∼2020년 관측 자료를 분석해 여름은 20일 길어지고 겨울은 22일 짧아졌다고 발표했다. 봄·가을 길이와 관련된 언급은 없으나 기후 변화가 우리나라의 사계절과 24절기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줬다.
다치바나 교수는 수상 소감을 통해 “풍성한 사계절을 즐기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줄이자”고 했다. 인간 노력으로 기후 변화의 큰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기후 변화가 한국인의 정서 변화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태국은 계절을 건기(11~2월), 여름(고온 건기, 3~5월), 우기(6∼10월)로 나눈다. 미래엔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빼앗긴 들에도 고온 건기는 오는가’,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는 ‘건기의 기도’가 되는 셈이다. 생명력 넘치는 봄 흥취와 풍요·애수가 교차하는 가을 정취를 후손은 시청각 자료로나 볼 것이라 생각하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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