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7년 교황 클레멘스 7세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던 신성로마제국이 로마로 군대를 보내 교황청을 습격했다. 1506년 이래 교황청은 여러 나라 출신 용병으로 구성된 근위대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패색이 짙어지자 그만 뿔뿔히 흩어져 도망치고 말았다. 스위스 용병들만이 끝까지 교황 곁을 지키며 그의 안전한 대피를 도왔다. 당시 스위스 용병 189명 가운데 무려 147명이나 전사했다고 하니 그 용맹함과 충성심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이후 교황청 근위대는 전부 스위스 군인으로만 채우는 전통이 생겨났다.

“저는 교황 성하(聖下)를 지키고 섬기기 위해 제 모든 힘과 희생, 필요하다면 목숨까지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지난 4일 바티칸시티 교황청의 아포스톨리코 궁전 안뜰. 흔히 ‘사도궁’(使徒宮)으로 불리는 이 교황의 관저 건물 앞에서 새로 근위대에 배치된 군인 27명의 선서식이 열렸다. 사실 고작 130여명 규모의 근위대만으로 교황을 지키는 것은 역부족이다. 오늘날 바티칸시티의 치안 유지와 교황의 신변 경호는 이탈리아 정부가 파견한 헌병들이 주로 담당한다. 교황 근위대의 임무는 화려한 전통 제복을 입고 교황청의 각종 의식과 행사에 참여하는 일종의 의장대와 비슷하게 축소된 것이 현실이다.
이날 신임 근위대원 선서식은 평소와 달리 특별했다. 교황 레오 14세가 이례적으로 직접 행사를 주재했기 때문이다. 근위대에 병력을 제공하는 국가인 스위스의 카린 켈러주터 스위스 대통령도 함께하며 교황과 인사를 나누고 또 자국 용사들의 늠름한 행진을 지켜봤다. 2015년부터 근위대를 지휘하는 크리스토퍼 그라프 사령관(스위스 육군 대령)은 “신임 근위대원 선서식을 교황이 직접 주재한 것은 바오로 6세 시절인 1968년 이후 5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소개했다. 정작 교황청은 이와 관련해 별도의 설명을 내놓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낸다.

교황 근위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신병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단 응모 자격이 까다롭다. 가톨릭 신앙을 믿는 19∼30세의 스위스 미혼 남성만 지원이 가능하다. 키는 1m74㎝(5피트 7인치) 이상이고 주변의 평판이 좋아야 한다. 의무 복무 기간 26개월을 채우고 장기 복무를 택한 요원들은 경력이 5년을 넘기면 결혼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 3년의 의무 복무 기간이 추가된다. 근위대원은 야간 외출이 허용되는 대신 통금 시간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이쯤 되면 요즘 같은 시대에 ‘극한 직업’이 아닐까. 교황이 근위대 신병 선서식을 직접 주재한 것도 그들의 사기 진작을 통해 자원자 수를 좀 늘려보려는 고육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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