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인도적 차원의 교류를 북한에 제안했다. 비정치적 사안부터 교류·협력하면서 장기간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해나가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선보인 한반도 평화 구상 ‘E.N.D(엔드) 이니셔티브’를 이행하기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하는 모습이다.
추석 연휴 첫날이자 이산가족의 날(10월4일·음력 8월13일)을 하루 앞둔 지난 3일 이 대통령은 인천 강화평화전망대에서 실향민들과 만나 “남북 이산가족들이 생사 확인이라도 하고, 하다못해 편지라도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남북의 정치의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북측에도 인도적 차원에서 (이런 조치를) 고려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최근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지금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돼서 상태가 매우 안 좋다. 너무 적대적으로 변했다”며 “가장 큰 책임은 정치”라고 진단했다. 이 대통령은 “다른 어떤 영역을 제외하더라도 이산가족들의 생사 확인과 최소한의 소통 부분은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꼭 진척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강조했다.
◆‘E.N.D 이니셔티브’ 천명 뒤 첫 구체적 교류 제안…대화 불씨 될까
이번 메시지는 이 대통령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교류(Exchange)·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엔드 이니셔티브를 제시한 뒤 북한을 향해 나온 구체적인 첫 교류 제안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산가족이라는 인도적 사안을 엔드 이니셔티브 구상의 첫 단추로 내세운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고리로 북한과 대화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담겼을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이 공식 연설 등 형식이 아니라 실향민을 만나 위로하는 과정에서 한 발언이라는 점도 이산가족 문제의 비정치적 성격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 당시 ‘교류’와 관련해 “교류와 협력이야말로 평화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굴곡진 남북관계의 역사가 증명해 왔던 불변의 교훈”이라며 “남북 간 교류·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의 길을 열어나가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현재 남북관계 등을 고려할 때 이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북한의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체 상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했다.
북한은 ‘핵 포기 절대불가론’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은 지난달 2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우리에게 비핵화를 하라는 것은 곧 주권을 포기하고 생존권을 포기하며 헌법을 어기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우리는 핵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비판·우려도 상존…대통령실 “E.N.D, 서로 추동하는 방식으로 병행 추진”
정치권에서는 북한이 비핵화 불가 입장을 견지하는 상황에서 교류와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 우려도 상존한다. 대통령실은 세 요소(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 간 우선순위나 선후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추동하는 구조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29일 국내 통신사들과의 인터뷰에서 “일각에서는 ‘세 가지를 별도로 추진하는 것 아니냐’, ‘비핵화는 안 하겠다는 것이냐’며 비판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위 실장은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이 국어·영어·수학을 공부하겠다고 했더니 ‘너 수학을 공부 안 하려는 거구나’라고 묻는 셈이다. ‘국·영·수’ 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순서로 공부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세 요소가 우선순위 없이 서로를 추동하는 방식으로 병행 추진을 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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