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사업주 보호” 배임죄 폐지
공백 최소화 위해 대체 입법 추진
트럭 짐칸 개조·간판 지각 신고 등
생활 밀착형 의무위반 과태료 전환
시정 명령 후 불이행만 형벌 부과
당정이 110개 경제형벌 규정을 개선키로 한 건 현행 배임죄 등이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등 부작용이 상당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단순 실수에 따른 경미한 의무 위반에도 징역형이 부과되는 등 현행 경제형벌 체계가 소상공인·자영업자 경제활동의 발목을 잡는 점 역시 문제라고 당정은 밝혔다. 가령, 미용실 상호명 변경신고를 안 한 경우 최대 징역 6개월 또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될 수 있었다. 당정은 배임죄는 이른 시일 내에 대체 입법을 마련하고, 경미한 위반으로 분류되는 68개 형벌 조항은 과태료로 전환키로 했다.

30일 관계 부처가 발표한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에 따르면 당정은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됐던 형법상 배임죄는 ‘선의의 사업주 보호’ 차원에서 폐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중요 범죄에 대한 처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배임죄 요건을 명확히 하고 처벌범위를 축소하기로 했다. 특히 최저임금법 관련 양벌 규정(불법행위자와 법인을 함께 처벌) 등은 사업주가 충분한 주의 의무를 다했을 경우 면책 가능하게 할 방침이다. 배임죄 개선안은 법리 검토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향후 발표될 2차 방안에 구체적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이 저지르기 쉬운 경미한 의무 위반의 형벌 조항은 대거 과태료로 전환된다. 트럭 짐칸(적재함) 크기를 변경하는 등 승인 없이 자동차를 튜닝한 경우, 현재 최대 징역 1년 또는 벌금 1000만원에 처해질 수 있었다. 당정은 이를 개정해 원상복구명령과 과태료 최대 1000만원으로 처벌 수위를 낮추기로 했다. 아울러 숙박업·미용업·세탁업 등 공중위생영업의 상호명 등 변경신고를 안 한 경우 기존에는 최대 징역 6개월 또는 벌금 500만원이 부과됐지만 앞으로는 과태료 최대 100만원으로 완화된다.
시정명령·원상복구명령 등으로 입법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18개 규정은 ‘선(先) 행정조치-후(後) 형벌부과’ 방식으로 바뀐다.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상품가격 등을 부당하게 결정하는 경우 최대 징역 3년을 바로 부과하거나 시정조치명령 후 이를 불이행 시 최대 징역 2년을 부과할 수 있었다. 당정은 앞으로 직접처벌 조항은 폐지하고 시정조치명령 후 이를 불이행하는 경우에만 형벌을 부과하기로 했다.

다른 법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형벌을 폐지하거나 수준을 완화하는 규정은 18개다. 100인 이상 대규모 급식소 운영자가 조리사나 영양사를 고용하지 않은 경우 형량은 최대 징역 1년 또는 벌금 1000만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일부 형벌은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과징금으로 전환된다. 배달로봇 등 실외 이동로봇을 승인 없이 개조했을 경우 형벌 조항이 폐지되고, 과징금 최대 5000만원이 부과된다.
재계는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반기면서 향후에도 정부와 여당이 기업들의 의견을 반영해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경제형벌 합리화 작업을 이어가 달라고 당부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이번 방안은 기업 의사결정 과정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정희철 한국무역협회 무역진흥본부장은 “상법·노조법 등 잇따른 입법으로 기업 활동 전반이 위축된 상황에서 이번 조치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숨통을 틔워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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