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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K디스카운트 자사주 소각” 재계 “주가 부양효과 상실” [심층기획]

입력 : 2025-10-01 06:00:00 수정 : 2025-10-01 09:43:16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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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상법 개정안’ 놓고 평행선

李 대통령 “韓 투자 걸림돌 다 바꿀 것”
민주 “자사주 소각 의무화 11월 처리
시장서도 지배주주 견제에 긍정 반응”

재계 “주가 상승 반짝효과… 과한 입법”
경영활동 위축·인수합병 차질 우려도

韓, 자사주 외에 경영권 방어제도 부재
포이즌 필·차등의결권 등 도입 목소리
“처분과정 공정성 확보 구체논의 필요”

기업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놓고 여권과 재계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여당은 이 법안 추진 배경으로 ‘국장(국내 증시) 탈출은 지능순’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일반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했던 한국 기업들의 나쁜 관행을 꼽는다. 한국 기업들의 대주주 이해관계를 중시한 행태가 북핵만큼이나 한국 증시를 짓누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기업들은 자사주를 모두 태워 없애라는 급진적인 정책을 펴면 기업의 자사주 매입 순기능마저 사라져 결과적으로 증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반박한다.

기업의 경영권이 약화돼 외부 공격에 취약해질수록 한국 경제의 체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재계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대신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처럼 자율에 맡기되 기업 스스로 주주 가치 제고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이유다.

◆與 “기업의 주주 가치 훼손하는 행태 막겠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참석차 방문한 미국 뉴욕에서 “기업의 불합리한 의사결정 구조를 합리적으로 바꾸겠다”며 “3차 상법 개정에 저항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장애 요소를 다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화답하듯 더불어민주당은 기업이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강제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11월 처리할 전망이다.

재계에선 앞서 처리된 1·2차 상법 개정안보다 경영권 위협 측면에서 ‘더더 독한’ 개정안으로 보고 있다.

자사주 소각은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사주를 말 그대로 태워 없애는 것이다. 미국에선 ‘자사주 소각→주당순이익(EPS) 상승→증권사의 목표주가 상향→해당 기업 주가 상승’이 공식처럼 통한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자사주를 1조원가량 매수하자 테슬라 주가가 껑충 뛰어오르기도 했다. 자사주를 소각한 것은 아니지만 자사주를 지배력 방어에 동원한다는 인식이 작은 미국에선 매입만으로도 시장이 환호한다. 기업이 자사주를 소각하면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 주가가 오른다.

그러나 한국에선 자사주가 대주주, 즉 오너 일가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사례가 빈발하면서 소액 주주들이 피해를 보곤 했다.

 

‘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위원인 김남근 의원은 1·2차 상법 개정안 통과 이후 “다음 이슈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라며 “자사주를 과도하게 보유했다가 경영권에 문제가 있을 때 우호 세력에 싼값에 넘겨 주가가 하락하는 폐해를 방지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자사주가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우려가 투자자들에게 있고, 그런 인식이 주가를 억누르는 요인 중 하나인 만큼 자사주를 모두 소각시키는 3차 개정안의 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여권은 이재명정부 들어 주가가 3200선을 넘은 건 지배주주를 견제하는 상법 개정에 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한 결과라고 평가한다.

◆재계 “자사주 매입 감소, 경영활동 위축”

재계에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과한 입법이라고 반발한다. 이미 갖고 있는 자사주를 소각하면 발행 주식 수가 줄어 반짝 주가가 오르겠지만,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장기적으로는 자사주를 매입하는 기업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란 주장이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소각에 의한 단발적인 주가 상승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의 반복적인 자기 주식 취득을 통한 주가부양 효과를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또 “자사주는 인수합병 대가 지급 등 기업의 경영활동 수단으로 활용될 때가 많은데, 소각이 의무화되면 주요 산업 분야의 구조조정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서로 지분을 갖고 있는 A사와 B사가 합칠 상대 회사에 대한 각자 지분은 자사주로 바뀌게 된다. 이를 무조건 소각하게 하면 자본 구조가 왜곡되거나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생겨 인수합병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중국의 저가 공세와 기술 성장으로 입지가 작아진 석유화학 업종의 경우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인데, 현재 상호주를 보유하며 전략적으로 제휴한 기업들의 경우 소각 의무화 시 자사주 처분 문제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했다.

2023년 자본시장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재무구조 개선(21.2%)을 위해 자사주 처분을 가장 많이 했고, 이어 ‘투자·운영자금 확보’(20.0%), ‘교환사채 발행’(14.3%), ‘전략적 제휴’(13.6%), ‘스톡옵션·성과보상’(12.1%), ‘합병’(4.0%), ‘주가안정·주주환원’(3.9%), ‘주식매수청구권’(3.7%), ‘경영권 안정’(0.8%) 등의 이유로 자사주를 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25일 서울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처리되고 있다. 연합뉴스

◆“경영권 방어 제도 먼저 도입해 달라”

한국에 자사주 외에는 이렇다 할 경영권 방어 제도가 없는 점도 기업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자사주가 단순한 주가 부양·주주환원 수단을 넘어 ‘경영권 방패’ 기능을 해왔기 때문이다. 2003년 영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이 SK를 공격하자 SK는 당시 보유했던 자사주 10.41%를 우호세력인 하나은행·신한은행 등에 매각해 경영권을 방어했다. 상법상 자사주에는 의결권이 없어 제3자에게 매각해 우호 지분을 늘린 것이다. 2015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을 공격했을 때도 자사주가 방화벽 역할을 했다.

재계에선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앞서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새로운 주식을 매입할 수 있게 하는 ‘포이즌 필’ △특정 주주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보유한 주식의 금액·수량과 상관없이 주주총회에서 의결한 중요사항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금액은 2020년 1조2000억원에서 2021년 2조5000억원, 2022년 3조1000억원, 2023년 4조8000억원, 2024년 13조9000억원, 2025년 7월까지 18조3000억원으로 증가하며 자발적으로 주주 가치 제고에 동참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자사주 소각 의무보다는 (자사주 처분 시 주주총회 의결을 거치게 하는 등) 처분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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