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자 32.3% “괴롭힘 피해 겪어”
4명 중 1명 폭언·폭행·성희롱 당해
법 시행 이후 84%는 그냥 넘어가
불이익 등 이유 신고 절차 미이용
“복무기관 재지정 보장 대책 필요”
“네가 내 뒤통수쳤냐.”
올 5월 사회복무요원 김성환(가명)씨는 근무 중인 요양시설 A원장으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들었다. 김씨가 이전에 들은 폭언과 부당업무 지시 사실에 대해 지방병무청에 알리자 벌어진 일이다. 시설이 별다른 교육을 운영하거나 관리 감독 인원을 배치하지 않은 채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일을 사회복무요원들에게 지시했고 A원장이 “너네 같은 공익들은 일부러 뺀질거려야 일을 안 시키니까 그러는 거냐” 등 폭언을 했다는 게 김씨 신고 내용이었다. 병무청 측은 별도 실태조사 없이 A원장에게 전화해 구두로 시정조치만 했다.

사회복무요원을 대상으로 지위·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복무기관 내 괴롭힘 금지법’(병역법 제31조의5·6)이 지난해 5월 시행돼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사회복무요원 3명 중 1명은 괴롭힘을 겪고 있단 조사결과가 나왔다. 괴롭힘 경험이 있는 대다수가 김씨 사례처럼 신고를 하더라도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기는커녕 되레 불이익을 받는 게 우려돼 신고 절차를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복무요원 권리 보호 단체인 사회복무유니온은 30일 서울 전태일기념관에서 전국 사회복무요원 600명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 중 32.3%(194명)가 복무기관 내 괴롭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유형별로 보면 ‘업무지시 남용’(사적용무 지시, 업무 전가 등)이 23.7%로 응답률이 가장 높았고, 이어 ‘부당대우’(부당 질책, 경고장 발급·연장복무 협박 등)가 18.7%, ‘언어폭력’(폭언·협박 등) 15.8%, ‘성폭력 및 성희롱’(신체접촉, 외모평가 등) 7.3%, ‘신체 폭력’(폭행·얼차려 등) 1.8% 순이었다.

괴롭힘 경험 응답률만 따지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전인 2023년 조사(64.0%)보단 절반가량 줄어 개선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 괴롭힘을 겪은 이들 중 80% 이상은 법에 근거한 신고 절차를 이용하진 않았다고 답했다.
법 시행(2024년 5월1일) 이후 괴롭힘을 당한 178명 중 84.3%(150명)가 신고하지 않았다고 했고, 그 이유로 ‘신고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71.3%·복수응답), ‘신고로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49.3%), ‘병무청·복무기관·근무지를 신뢰할 수 없어서’(44.0%)를 꼽았다. 실제 괴롭힘에 신고 등 대응을 했다는 응답자(37명) 중 46.0%(17명)는 불리한 처우를 당한 적 있다고 답했다.
피해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복무기관 재지정을 보장하는 등 신고 이후 조치에 대해 신뢰를 높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은성 사회복무유니온 위원장(노무사)은 “현행법엔 복무기관 재지정 사유에 ‘괴롭힘 인정’이 빠져 있고, 괴롭힘이 확인되면 같은 기관 내 사무공간 변경을 포함하는 ‘근무장소 변경’ 조치를 하도록 명시돼 있을 뿐”이라며 “피해 요원 입장에서는 기관 자체를 옮기는 게 확실히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신고 절차 활용을 꺼리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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