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세계 스포츠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될 것이다. 3월20일 그리스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42세의 젊은 여성 커스티 코번트리(짐바브웨)가 제10대 IOC 위원장으로 뽑힌 것이다. 1894년 피에르 드 쿠베르탱(프랑스)의 주도로 IOC가 창설된 이래 여성 수장이 탄생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6월 정식으로 취임한 코번트리 위원장의 임기는 2033년 6월까지 8년 동안이다. 여기에 IOC 규정상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4년 임기가 추가될 수 있다. 따라서 코번트리 위원장은 오는 2037년까지 무려 12년간 IOC를 이끌며 하계 및 동계 올림픽을 비롯한 지구촌 스포츠 축제를 앞장서 조직할 것으로 보인다.

코번트리가 태어난 짐바브웨는 아프리카 남동부에 자리한 나라다. 1980년에야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이 되었다. 4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내륙국이다 보니 수영은 대중이 즐기는 운동이 아니다. 더욱이 짐바브웨 국민 대다수인 흑인 사이에서 수영은 비인기 종목으로 통했다. 어린 코번트리는 바로 이 점을 비집고 들어갔다. 수영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고교생 시절에 국가 대표로 발탁됐다. 2004년 아테네를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을 거쳐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조국 짐바브웨를 위해 뛰었다. 메달만 7개(금 2, 은 4, 동 1)를 따내며 짐바브웨를 대표하는 스포츠 영웅으로 자리매김 했다.
짐바브웨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선 나름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스타인지 몰라도 국제 스포츠계에선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런 코번트리가 2025년 6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IOC 9대 위원장 토마스 바흐(독일)의 후임자를 뽑는 선거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선도 아니고 1차 투표에서 97표 중 과반인 49표를 얻어 당선을 확정지었다. 외신들은 일제히 “대이변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애초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주니어(스페인) IOC 부위원장은 28표로 2위에 그쳤다. 사마란치라니,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지 않은가.

사마란치 주니어는 IOC 7대 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1980~2001년 재임)의 아들이다. 한국인들에겐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44년 전인 1981년 9월30일 그는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제24회(1988년) 하계 올림픽의 개최 도시는 서울”이라고 발표했다. 프랑스어가 낯선 한국인의 귀에 사마란치의 서울시 발음은 ‘아 라 빌 드 쎄울’(a la ville de Seoul)로 들렸다. 오는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전북 전주시가 도전장을 내밀고 나섰다. 한국과 인연이 깊은 사마란치 주니어를 제치고 IOC 위원장이 된 코번트리가 개최 도시 발표를 맡을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벌써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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