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유권자 맞춤형 정당 매칭 ‘발오마트’… 가짜뉴스 폭주 막아 [심층기획-매니페스토-내일을 바꾸는 약속]

관련이슈 세계뉴스룸 , 2025 대선 매니페스토-내일을 바꾸는 약속

입력 : 2025-09-30 05:55:00 수정 : 2025-09-30 07:25:04
베를린=글·사진 정세진 기자 oasis@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1회> 독일 - 유권자 맞춤형 정책 가이드

1. 국가가 공약 안내 서비스
2025년 2600만건 이용… 獨 유권자 절반 달해
정치 무관심층 정당 이해도·인식 높여
의회 위원회 감독… 중립·신뢰성 보장도

2. 과학적 공약 연구 장기프로젝트
WZB, 45년간 전세계 공약 데이터화
대형언어모델 개발해 다양한 관점 담아
찬·반 대립구도 갇힌 韓 정치 연구와 비교

3. 시민사회, 정치인과 대화 연계
설립 37년 된 시민단체 ‘더 데모크라티’
최근 1년반 동안 150회 대화 모임 열어
공약 감시·소통으로 선거 제도 신뢰 쌓아
내년 6월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8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당들의 정책선거 준비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세계일보는 지난 대선 당시 3개월간 대선 후보들의 선거공약을 다각도로 비교·분석하고 공약 관리의 중요성을 집중 조명했다. 이번에는 한국정치에서 정책선거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외의 정책 중심 선거문화를 직접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독일을 시작으로 호주, 영국 등 현지 전문가와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선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공약이 진정한 민주주의 도구로 기능하기 위해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짚어본다.

 

‘발오마트’ 프로젝트 책임자 파멜라 반트(왼쪽부터), ‘매니페스토 프로젝트’ 책임자 폴라 레만, 시민단체 ‘더 데모크라티’ 요제프 메르크. 세계일보 자료사진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계속해야 할까?”

독일 유권자 안내 도구 플랫폼 ‘발오마트(Wahl-O-Mat)’의 올해 독일 2월 총선용 첫 질문이다. 이용자는 ‘동의’, ‘중립’, ‘비동의’ 버튼으로 정치적 쟁점 질문 38개에 답하면 자신과 잘 맞는 정당을 확인할 수 있다. 질문을 건너뛰는 것도 가능하다. 응답이 끝나면 결과 화면에는 내 가치관과 가장 가까운 정당뿐만 아니라 각 질문에 대한 정당별 입장도 상세히 설명돼 있다.

 

이렇듯 발오마트의 ‘발(Whal)’은 ‘선거’ 혹은 ‘투표’를 뜻하고, ‘마트(mat)’는 ‘자동판매기(Automat)’의 줄임말로 선거 자동 매칭기라는 의미다. 2002년 발오마트를 개발하고 출시한 연방정치교육원(BPB)은 청년 유권자의 낮은 투표율에 주목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BPB 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발오마트 프로젝트 책임자 파멜라 반트는 “고령화로 청년층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있었다”며 “많은 청년이 모든 정당을 비슷하게 느끼거나 정치를 어려워했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발오마트 사용 건수는 출시 이후부터 꾸준히 증가했다. 2002년 360만건에서 올해 총선에는 2600만건으로 7배가량 늘었다. 독일 유권자가 약 590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가까운 유권자가 이를 사용한 셈이다. 사용자 설문 결과도 긍정적이다. 발오마트를 사용해 정당 차이를 명확히 이해한다는 응답은 2005년 48%에서 2017년 62%로 증가했고, 정치 이슈 인식은 같은 기간 44%에서 51%, 추가 정보 탐색 의향은 47%에서 55%로 늘었다.

베를린 포츠담 근처 브란덴부르크에 사는 주민 로만 오토(39)씨는 “선거 때마다 평균 세 번 이상 발오마트를 사용한다”며 “매번 같은 정당이 나오긴 하지만, 내 생각과 정당의 공약도 모두 변하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 내 정치적 가치관과 맞는 정당을 점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에선 독일과 달리 정당 정책 비교 플랫폼은 대부분 일회성에 그쳤다. 2017년 대선 당시 한 정책 분석 스타트업은 후보 공약을 익명으로 보여주고 사용자에게 맞는 후보를 안내하는 서비스를 발표했다. 약 30만명이 참여했던 서비스였지만 지속하진 않았다. 2018년 6·13 지방선거 때 한 지역 언론사가 제작한 맞춤형 후보 찾기 서비스 역시 선거 이후 중단됐다.

플랫폼이 산발적으로 생기고 사라지며 서비스의 공신력이 부재한 한국과 달리 발오마트를 개발한 BPB는 독일 내무부 산하에 있다.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의회 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초당적 구조가 발오마트의 중립성과 신뢰성을 보장하는 핵심요소라고 평가했다.

 

◆정당과 유권자 잇는 공약연구

독일에는 정당과 유권자를 잇는 플랫폼 외에도 매니페스토 연구가 존재한다. 11일 유럽 최대규모 비대학 사회과학연구기관인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WZB)에서 만난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 폴라 레만 박사는 “가짜뉴스와 포퓰리즘이 만연한 시대에 과학적이고 데이터에 기반한 정보를 공적 토론에 제공할 수 있을 때 가장 보람차다”고 전했다.

1979년 시작된 ‘매니페스토 프로젝트(Manifesto Project)’는 전 세계 정당들의 선거공약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매니페스토 프로젝트의 공약 텍스트 분석은 각국의 공약을 문장 단위로 나눠 데이터화하는 작업이다. 45년째 연구가 이어지면서 공약의 원문까지 제공하는 매니페스토 코퍼스(Manifesto Corpus)와 공약 텍스트 기반 자체 대형언어모델까지 개발했다. 이는 한국의 정치 연구 방법론과 대조된다.

이에 대해 매니페스토 프로젝트의 연구자로 참여했던 이지호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교수는 “한국의 정치 연구는 단순히 찬성과 반대의 대립 구도로 답하는 여론조사 방법이 위주다. 마치 어떤 문제에 꼭 찬반이 있다는 전제로 대립각을 세우지만 매니페스토 프로젝트의 연구는 정당들이 내세우는 공약 안에서 어떤 이슈를 더 중시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레만 박사는 매니페스토 프로젝트의 핵심 철학을 ‘개방성’으로 꼽았다. 최종 분석 데이터뿐만 아니라 원본 텍스트, 정당에 대한 맥락 정보까지 모든 것을 공개해 연구자들이 자신만의 연구 질문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 이 교수는 “정당과 유권자 사이를 잇는 매개가 바로 공약이며, 공약 데이터 분석은 정당이 실제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를 살피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결국 매니페스토 연구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평가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대화하는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시대, 독일에서는 시민과 정치인 간의 대화를 통해 흥미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37년 전 설립된 시민단체 ‘더 데모크라티(Mehr Demokratie·민주주의 확대)’에서 민주주의 문화부문을 담당하는 요제프 메르크 박사를 12일 베를린 율리우스 레버 브뤼케역에서 만났다. 그는 시민이 정치 신뢰를 쌓기 위해서 정치인의 공약 이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라고 강조했다. 지난 1년반 동안 이들이 개최한 대화 모임은 150회다. 작년 40회에서 올해 100회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 모임에는 정치인도 참여한다.

일례로 독일 정부가 의뢰한 ‘영양정책 시민의회’에서 한 보수정당 소속 정치인은 시민들의 대화를 듣고 종일 머물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메르크 박사는 “그는 모든 토론을 들은 후 시민의회 결과가 의회에서 들려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며 “이처럼 공약을 지켜 쌓는 신뢰를 넘어서는 소통으로 쌓는 신뢰가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오피니언

포토

아이유 '눈부신 미모'
  • 아이유 '눈부신 미모'
  • 수지 '매력적인 눈빛'
  • 아일릿 원희 '반가운 손인사'
  • 미야오 엘라 '시크한 손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