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곳 중 11곳 수용의무 조항 없어
정부가 강제할 권한 없는 상황
추석 앞두고 응급실 공백 우려
“응급의료법 개정 즉각 검토를”
지난해 2월 촉발된 의·정 갈등 속에서 환자를 병원 응급실에서 거부해 재이송을 하는 일명 ‘응급실 뺑뺑이’가 급증한 가운데 17개 시도 중 11개 시도는 관련 지침에 응급환자 ‘수용의무’를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 갈등 이후 응급실 이송에 3시간 이상 소요된 건수는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추석 연휴를 앞둔 상황에서 응급실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28일 소방청에 따르면 환자가 현장 출발 이후 병원 도착까지 ‘1시간 이상’ 지연된 건수는 지난해 2만7218건으로 집계됐다. 2023년 2만4186건보다 약 12.5%(3032건) 늘어난 수준이다. 특히 같은 기간 ‘3시간 이상’ 지연된 경우는 251건에서 551건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3시간 이상’ 지연은 올해 1∼8월까지 451건에 달해 지난해 건수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기준 지역별 응급실 뺑뺑이 건수는 강원 4058건, 충남 3319건, 경기 3251건, 경남 2686건, 경북 2394건 등의 순이다. 의·정 갈등 이후 병원 응급실 수용 역량이 나날이 열악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응급실 재이송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건 현장에서의 환자 수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영향이 크다.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17개 광역자치단체 모두 응급환자에 대한 이송·수용 지침을 수립해 현장에 적용 중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응급실 재이송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17개 광역자치단체에 ‘응급실 수용 곤란 고지 관리 표준지침 및 이송 지침’ 가이드라인을 보내 시도별 자원조사를 바탕으로 각 지역 실정에 맞는 지침 마련을 주문했다. 복지부 지침의 핵심은 ‘중증응급환자가 발생했지만 모든 응급의료기관에서 수용이 곤란하다고 고지할 경우 사전 합의한 기준에 따라 필수 수용해야 하는 병원(우선 수용 병원)을 지정하는 등 환자를 의무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지침은 2019년 한 병원의 응급실 수용 거부로 사망한 동희(당시 5세)군과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2022년 12월 시행된 응급의료법 개정안(동희법) 후속 조치로 마련됐다.
그러나 핵심 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 응급환자 수용의무 조항을 지침에 포함한 시도는 대구, 인천, 광주, 경기, 강원, 경남 등 6곳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부산을 비롯한 11개 지자체는 관련 지침에 이런 핵심 조항을 넣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응급환자 수용의무’가 현행 응급의료법상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광역자치단체별로 제정·운영하는 지침인 탓에 정부가 강제할 권한도 없는 상황이다.
응급실 뺑뺑이를 방지할 장치가 마땅치 않다 보니 추석 연휴를 앞두고 우려가 커진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 동안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총 6만7782명으로 이 중 402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305명은 응급실 내에서 사망했고, 97명은 응급실 도착 전에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복지부는 광역자치단체와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응급환자에 대한 수용의무 조치가 지침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하면 응급환자 수용의무 조치 내용을 담은 응급의료법 개정도 즉각 검토해 응급실 뺑뺑이 상황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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