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이중화(백업) 체계 등 간과
재발 방지책 허투루 세워선 안 돼

지난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전산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10시간 만인 27일 오전 불길이 잡혔다. 이번 화재로 정부 정보업무시스템 647개가 동시에 마비되며 대혼란이 발생했다. 정부가 화재 피해를 보지 않은 551개 시스템은 순차적으로 재가동할 예정이라고는 하나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국정자원 전산실은 국가 전산망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곳이다. 이런 곳의 전산시스템에서 화재가 발생해 국민 일상이 붕괴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화재는 장애가 생겨도 전기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정전 전원 장치(UPS) 리튬이온 배터리 교체 과정에서 하나의 배터리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단순 기술적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리튬이온 배터리로 인한 화재는 수년째 제기돼 온 문제다. 광주와 대구 센터 등 백업체계가 있음에도 647개 시스템이 동시에 멈춘 것은 명백한 설계 결함이다. 이러고도 국가 전산망 관리체계에 허점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나.
데이터를 보관하는 클라우드 환경의 이중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태가 커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도 어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당연히 이중 운영체계가 필요한데 왜 지금까지 준비하지 않았는지, 이 문제도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중화란 유사 사태를 대비해 물리적으로 분리된 곳에 똑같은 시스템을 구축해 놓는 것을 말한다.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쌍둥이’ 예비시스템으로 서비스의 연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시대 데이터센터 운영 이중화는 기본 중의 기본인데 이를 간과한 셈이다.
정부는 2022년 10월 ‘카카오 먹통’ 사태 당시 민간 플랫폼에 클라우드 다중화·백업체계를 사실상 의무화하며 강도 높은 재난 대비책을 요구해 왔다. 정부 전산시스템이 화재나 지진 등으로 한꺼번에 소실될 경우 백업자료로 3시간 내 복구를 장담했다. 결국 이런 호언장담은 공염불이 됐다. 이러고도 업체들 잘못만 나무랄 수 있겠나. 더구나 2023년 비슷한 행정망 전산 장애를 겪고도 여전히 대처는 미흡했다. 정부의 구조적 부실과 안일한 대응이 낳은 참사라는 비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이번 화재로 세계 최고 수준 디지털 정부를 구현하겠다는 새 정부 청사진도 무색해졌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마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잦은 먹통에 국민이 속 터지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완벽하게 마련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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