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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섭의전쟁이야기] K방산, 그 뿌리는 베트남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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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28 22:54:02 수정 : 2025-09-28 22: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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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은 ‘K방산’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을 만큼 방산 강국으로 떠올랐다. 한국 무기는 세계 시장에서 러브콜을 받고, 수출액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 전인 1960년대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국방비의 80% 이상을 미국 원조에 의존했고, 장병들의 손에는 2차대전과 6·25전쟁 때 쓰던 낡은 M1 개런드와 카빈이 들려 있었다. 북한은 ‘4대 군사노선’을 내세워 군사력을 빠르게 증강했지만, 한국군은 스스로 현대화를 추진할 여력이 없어 군사력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다.

1965년 10월 12일 수도사단 파월 환송식. 출처: e영상역사관

이 판을 바꾼 계기가 바로 베트남 파병이었다. 1965년 한국은 미국 요청에 따라 전투부대를 파병했고, 미국은 ‘브라운 각서’를 통해 군 현대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구체적 이행기한이나 의무가 없는 모호한 약속이었고 전쟁 상황에 따라 언제든 흐지부지될 수도 있었다.

분수령은 1967년 오작교·홍길동 작전이었다. 한국군은 처음으로 미군식 대규모 ‘탐색격멸’ 작전에 투입됐고, 미군은 성과를 의심하며 참관단을 보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낡은 소총을 들고도 치밀한 수색과 야간 매복으로 성과를 거두었고, 미군은 이러한 한국군을 두고 “미군이 오랜 시간 잊고 있던 보병 고유의 기본적 전술에 여전히 능숙한 훌륭한 전사”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성과와 평가는 한국군 현대화 요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미군은 한국군이 구식 무기만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낸 만큼 현대식 무기를 갖추면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았다. 전장의 성과와 현장의 요구가 맞물리며 한국군은 마침내 전원 M16 소총으로 무장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개인화기 교체가 아니라 한국군이 미군과 같은 ‘현대식’ 무기를 쓴다는 상징적 의미였다. 이후 헬리콥터, 장갑차, 전투기 도입으로 변화는 본격화됐다.

M16 도입은 지급에서 끝나지 않았다. 1971년 육군은 소수의 기술자를 선발해 미국 콜트사로 보냈고, 이들은 제작기술을 배워 돌아와 국내 생산에 나섰다. 밤낮없이 매달린 끝에 1974년에는 연간 10만정을 생산했고, 불과 4년 만에 60만정 생산을 조기 완료했다. 베트남 정글에서 싸운 장병들의 헌신, 그리고 귀국 후 기술을 집요하게 익혀낸 젊은 기술자들의 노력이 오늘날 방산 강국 대한민국의 토대를 만들었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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