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논란에 혼선…北 논리 힘 실릴 수도
남북관계 타개 고육책일지라도 신중해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연일 남북 두 국가론을 설파하고 있다. 정 장관은 24일 통일부와 북한연구학회가 주최한 ‘북한의 2국가론과 남북기본협정 추진 방향’ 세미나 축사에서 “적대적 두 국가론을 평화적 두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두 국가론에 동조 의사를 밝혔다. 이에 통일 포기·영구 분단적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25일 기자 간담회에서 남북에 대해 “사실상의 두 국가, 이미 두 국가, 국제법적으로 두 국가”라며 “적게는 50∼60% 국민이 북한을 국가라고 답한다. 국민 다수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두 국가라는 것,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 영구분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정 장관 말대로 북한의 국가성 인정이 곧바로 통일 부인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동서독도 1972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라는 국호로 상호 국가성을 인정해 주권·영토 존중, 국경 불가침, 무력 불사용, 내정 불간섭, 상주대표부 설치를 골자로 하는 기본조약을 체결했다. ‘통일’이라는 단어는 단 한 개도 없는 이 조약이 민족주의자 등에게서 비난받았으나 오히려 통일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다. 상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경제, 학술, 기술, 무역, 보건, 통신, 스포츠 등 분야에서의 교류 협력을 촉진한다는 조약 정신에 따라 화해·협력이 확대됨으로써 결국 냉전 와해 시기 동독 주민이 서독과의 통일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했다. 정 장관 발언은 이런 역사적 경위에 따른 고민의 발로라고 본다.
문제는 정 장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국민의 통일 무용론, 통일 거부감의 확산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실시한 올해 2분기 ‘통일 여론·동향’에 따르면 국민의 3분의 1(30.4%)은 통일이 불필요(전혀 불필요+별로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통일 불필요 응답은 20대에서 34.2%, 40대에선 41.9%에 달했다. 이념 성향별로는 진보 16.0%, 중도 31.9%, 보수 39.8%의 비율로 통일이 필요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조직법상 통일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 등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통일부 수장의 잇단 발언이 통일 당위성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통일의 길이 험하고 힘들더라도 박근혜정부시절의 통일대박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국민이 통일에 대한 긍정적, 낙관적 전망을 키우려는 비전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두 국가론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헌법 제4조 위반이라는 시비가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통일부 장관의 두 국가론 옹호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발언과도 배치돼 정부 내 혼선 논란도 빚을 수 있다.
1991년 12월 체결돼 1992년 2월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는 체제인정, 내부문제 불간섭, 파괴·전복행위 금지, 불가침, 교류 등의 내용을 망라하고 있다. 이 기본합의서에서는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민족관계와 국가관계가 상존하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에서 통일을 지향하겠다는 결의가 담겨 있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정권이 이 합의서를 휴지장으로 만드려고 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 자칫 이런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개발로 전도가 보이지 않는 남북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이라 할지라도 통일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고 불필요한 잡음을 만드는 두 국가론을 제기하는 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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