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 희망을 여는 민족이 되다
한민족이 독생녀 탄생을 준비해 온 민족적 기대는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기대와 맞물려 전개된다. 예로부터 종교를 포용하지 못한 국가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웠고, 모범 국가로 성장하기도 힘들었다. 한민족은 세계의 모든 종교를 받아들이며, 기독교의 꽃을 피운 열정적인 민족이기도 하다. 한민족의 기독교 기반 속에서 드러난 독생녀 탄생의 의미와 신학적 배경을 살펴본다.
◆인류 구원을 위한 섭리와 교회의 회복
하늘부모님은 창세 이후 끊임없는 섭리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다. 섭리의 중심에는 언제나 구원자를 맞이할 민족과 신앙 공동체가 있었다. 구약시대에 선택받은 유대민족의 4000년 역사는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기반이었다. 그러나 메시아로 온 예수를 십자가로 내몬 불신으로 인해 하늘의 뜻은 수포로 돌아가고 다시 때를 기다려야했다.
양순석 박사의 ‘기독교의 본질과 독생녀’에 따르면, 오순절 성령 강림이 하늘부모님의 새로운 구원섭리의 시작을 알리는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성경 사도행전 2장에 그날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그날 베드로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들으십시오.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부활 시키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어 베드로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권면했는데, 그날 약 3000명이 세례를 받아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성령의 역사와 사도들의 전도 활동을 중심으로 잉태된 기독교는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기독교는 숱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고, 마침내 서기 380년 로마의 국교로 자리 잡으면서 인류 구원섭리의 새로운 주체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의 교세가 막강하자 중세 들어 교황권의 타락과 분열이 초래됐다.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의 본질까지 흐리게 했으나, 1517년 루터에 이은 칼뱅의 종교개혁은 다시금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신앙운동을 촉발시켰다. 이어 1560년부터 1660년까지 영국에서 일어난 청교도(淸敎徒, Puritans) 운동은 형식주의에 매몰된 교회를 개혁해 나갔다. 청교도들은 타락한 인간은 철저한 회개를 통해 죄 사함을 받아야 하며, 인간적 공적이 아니라 오직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구원받은 증거로서 경건하고 엄격한 신앙생활을 실천하였다. 신앙의 자유를 찾은 이들은 미국으로 이주하여 성서적 원리에 기초한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다.
◆평양대부흥으로 한민족을 준비시키다
청교도 정신은 미국 건국의 토대가 되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물질문명 속에서 약화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여러 차례 대각성운동(Awakenings)이 일어났으며, 특히 1850년경의 제3차 대각성운동은 초교파적이고 평신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중생과 성결, 재림 대망을 강조하였고, 드와이트 무디(D. L. Moody)의 설교를 통해 학생들이 해외 선교에 헌신하게 되었다. 그 열기를 이어받아 언더우드, 아펜젤러, 하디 등 청년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개신교의 기틀을 놓았다.
20세기에 이르러 기독교 신앙은 한반도에도 깊이 뿌리내렸다. 특히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목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평양대부흥운동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보여주며 한국 기독교를 세계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평양 신학교 학생들과 교인들은 회개와 기도에 몰두하며 전국적으로 큰 물결을 이뤘다. 한국 교회 역사상 ‘영적 각성의 기점’으로 평가되는데, 한국인 특유의 신앙적 열정과 조직력, 사회적 참여 정신을 보여주었다.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에 따르면 일본의 개신교 사상가이자 무교회주의 선구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년)는 평양대부흥운동을 보고 하나님은 조선을 사랑하며, 군대와 군함보다 능력이 더 강한 성령을 보내주었다고 증거하였다. 그는 또 1918년부터 1년 6개월간 재림운동을 전개하면서 1919년부터 1920년에 걸쳐서 재림의 징조는 가장 선명하게 세계역사에 나타났다고 주장하였고, 기독교를 서양에 전파한 유대민족과 같이 조선이 다시 기독교를 동아시아에 전파하는 동양교화(東洋敎化)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예언하였다.
평양 대부흥운동과 함께 일제강점기 윤치호, 손정도, 조만식 등 기독교인 지도자들이 민족운동과 교육·사회사업에 앞장서 민족의 독립과 사회 정의를 위한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던 것으로 미뤄 볼 때, 한국은 동양의 예지적 전통과 더불어 기독교 신앙의 뜨거운 열정을 동시에 지닌 독특한 땅이었다. 이것은 충·효·인의 가치를 강조한 전통적 민족정신과 기독교적 정의관, 희생정신이 결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민족적·기독교적 배경은 독생녀 탄생을 맞이할 무르익은 토양이 되었다.
◆독생녀로 하늘부모님 품에 인류를 인도해
이처럼 하늘부모님은 유대민족과 기독교, 종교개혁과 미국 신앙운동, 그리고 한국 기독교의 부흥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를 통해 끝없는 인내와 사랑으로 독생녀를 맞이할 기반을 닦아오셨다.
이제부터는 역사적 기반 위에 나타난 독생녀의 본질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생녀의 등장은 단순한 종교적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는 본래 남성성과 여성성이 함께 있으며, 따라서 구원섭리 또한 남성인 독생자와 여성인 독생녀의 동반을 통해 완결된다. 예수는 독생자로 오셨으나 당대의 불신으로 인해 십자가 길을 걸었다. 그 결과 구원섭리는 완성되지 못했고, 성령은 ‘하늘의 어머니’로서 교회를 위로하고 이끌어 왔다.
그러나 성령은 실체가 아니기에 영적 위로에만 머물렀다. 하늘부모님의 구원섭리는 반드시 실체적인 독생녀를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 구약은 아버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시대였고, 신약은 아들 예수를 통한 구원의 시대였으며, 성약은 독생녀를 통해 어머니 하나님이 현현하는 시대이다.
독생녀의 탄생은 하나님의 여성성을 실체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이는 곧 창조 본연의 이상,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함께 있는 하늘부모님의 완전한 사랑을 인류가 체험하는 길을 트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독생녀는 인류를 참부모의 품으로 인도하는 섭리의 완결점이며, 인류 구원의 희망을 여는 서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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