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곳을 찾아갈 때는 나름의 각오가 필요하다. 길눈이 어둡고 쉽게 방향을 잃는 나 같은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나는 길을 잃으면 무조건 직진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 때문에 낯선 곳을 많이 헤맸다. 생각지 못한 풍경과 맞닥뜨릴 때도 있고 을씨년스러운 골목에 멀뚱히 서 있게 될 때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각오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였다.

최근 낯선 지역에 위치한 학교에 갈 일이 생겼다. 약도를 확인해 보니 길이 복잡하지 않고 캠퍼스 내 건물 배치가 단순했다. 가운데 잔디밭을 두고 ㅁ자 모양으로 건물이 둘러선 모양이라 크게 헤맬 일도 없을 듯했다.
그런데 정작 도착하고 보니 건물 각각의 구조가 복잡했다. 이쪽으로 들어갈 때는 1층이었는데 반대편에서는 3층이거나, 출구와 비상계단이 있을 법한 건물 가장자리가 아예 막혀 있는 식이었다. 층마다 구조가 달라 다른 건물과 완전히 분리되거나 이어졌다.
나는 크게 당황해 건물을 헤매 다녔다. 밖에서 보면 분명히 이어진 길 같은데, 막상 올라가 보면 벽이 나오거나 대나무가 송송 꽂혀 있는 작은 정원이 튀어나왔다.
가까스로 출구를 찾아 숨을 돌리던 차였다. 아마 중간에 길이 있었을 텐데. 나는 다시금 내 앞의 건물과 저 멀리 보이는 내가 가야 할 건물을 살폈다. 당황하면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나이니 분명 어디선가 쉬운 길을 놓쳤을 터였다. 그걸 어떻게 찾는담. 몇 발짝 물러나 거리를 가늠하는데 현관 앞을 쓸고 있던 직원분이 나를 불렀다.
“어느 건물로 가고 싶으세요?”
같은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나를 보고 있었는지 말을 거는 얼굴이 상냥했다. 저게 4동 아닌가요? 나는 아마 억울한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분명 저기 있는데 나는 왜 저기로 가질 못하죠,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한 손에 옮겨 쥔 직원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앞장섰다. 따라오세요. 그러곤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여기서 저기로 가는 제일 빠른 길을 알려드릴게요.”
직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다른 층은 막혀 있고 3층만 옆 건물과 연결되어 있어요. 내가 가려는 동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직원이 말했다.
“내가 여기 온 지 6개월 됐거든요. 처음에 얼마나 헤매 다녔는지 몰라요. 매번 물어볼 수도 없고 일은 해야 하고. 하도 헤매고 다녀서 이젠 지름길도 다 알아요.” 알려준 대로 따라가니 정말 순식간이었다.
나는 길 끝에서 내가 제대로 들어가는지 지켜보고 있는 직원에게 다시 한번 인사했다. 멀리 있었지만 그는 금세 알아챘을 것이다. 내가 얻은 깊은 안도감과 전하고픈 감사의 마음을.
낯선 곳에서 등이 땀에 흠뻑 젖도록 헤매본 사람은 어떻게든 길을 찾아낸 사람이다. 동시에 자신과 닮은 누군가의 당혹감을 제일 먼저 알아채는 사람이기도 하다. 길을 헤매다 좋은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타인의 마음으로 연결된 길을 문득 찾아낸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라면 타인에게 다정한 눈으로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다. 사납게 구겨진 마음 길을 다독이며 “내가 헤매봐서 아는데, 이 길은 틀림없이 당신이 원하는 곳과 이어져 있어요.”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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