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재무상태를 개선한단 이유로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전KPS에 매해 지급해야 할 수천억원대 공사·용역 대금을 고의로 늦게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4일 이 같은 내용의 ‘공공기관 결산 및 회계감사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한수원은 2023년 2400억원 적자가 예상되자 비용 절감 계획을 마련하기에 분주했다. 한수원은 발전설비 공사·용역 대금 지급을 위한 계획수선유지비로 1조8935억원을 책정했는데, 이 중 7375억원을 쓰지 않았다.
장부상으로는 마치 한수원이 수천억원을 절약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는 한수원이 계약 상대방인 한전KPS에 각종 용역 대금 청구를 늦춰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지급 대금이 한수원 측 장부에 기재되지 않아 겉보기에 재무상태가 개선된 것처럼 보이는 일시적 효과를 누린 셈이다.
그 부담은 한수원의 요구에 응한 한전KPS가 떠안았다. 한전KPS는 2023년 8월 발전소 정비용역 대금 청구 절차를 밟지 않아 250억 원을 받지 못했다. 한수원은 그 돈을 293일이 지나서야 지급하면서도 지연이자는 주지 않았다. 한수원은 이런 식으로 한빛1·4호기 정비용역, 월성 원자력본부 취수설비 정비공사 등의 대금 지급을 반복적으로 미뤘다.
한전KPS가 청구하지 않은 공사 대금은 매년 4분기마다 치솟았다. 2021년 2690억원이던 것이 2022년 3280억원, 2023년 4825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3개월 넘게 지급하지 않은 대금도 해마다 240억∼1680억원 규모에 달했다. 자금난에 시달리게 된 한전KPS는 결국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를 찾아 호소한 끝에 차입금 한도를 6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늘렸다.
감사원은 한수원 측에 대금 지급이 늦어지지 않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를 주고, 용역업체의 계약 의무가 실질적으로 이행됐다면 관련 대금을 재무제표상 비용과 부채로 기재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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