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에로영화 전성시대로 기억한다. 전두환 정권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3S 정책 속에서 한국 주류 영화계는 여배우의 몸을 최대한 소비하는 전략으로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려 했고 그 본격적인 출발점은 연방 영화사의 ‘애마부인’(1982, 정인엽)이었다. 영화의 파격적인 시나리오 때문에 이 영화가 사전 검열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검열 당국은 지나치게 외설적인 36개 장면과 제목을 문제시했고 제작사는 검열 당국의 지시 사항을 모두 수용하면서 사전 검열을 통과했다.
그러한 가운데 여배우의 육체를 흥행의 키포인트로 잡은 제작사는 옷을 입은 상태에서도 여배우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다. 영화 제목을 한자로 표기하라는 당국의 지시에 따라 애마(愛馬)는 애마(愛麻)가 되었고 제목은 ‘愛麻 부인’으로 변모했다. 실루엣이 드러나는 의상을 걸친 여배우의 몸을 굵은 빗줄기 속에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면서 교묘하게 검열을 피해 갔다. 그러한 우여곡절 속에서 성애에 대한 표현만큼은 과거보다 관대해졌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때맞춰 이뤄진 통행금지 해제와 심야영화관 운영은 첫 번째 ‘애마부인’에 초대박을 안겨주었고 1980년대 한국영화의 에로 전성시대가 열린다. 13편의 정전과 다른 많은 외전들, ‘애마부인 2016’까지 이어진 애마부인 시리즈는 긴 역사 속에서 한국영화 속 여성의 섹슈얼리티 변천사를 보여주는 사회학적 텍스트가 되었다. 물론 이것은 1980년대 한국사회의 현실 공간, 역사적 공간을 스크린에서 지워버리는 대가를 치르고서 가능했지만 말이다.

2025년 애마부인이 돌아왔다. 글로벌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에 한국영화계의 중견 이해영 감독의 신작 ‘애마’가 업로드된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애마’는 단순히 기존의 애마 행렬에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얹은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애마부인’의 스핀오프일 뿐 아니라 ‘애마부인’이라는 영화와 그것의 제작과정, 소비, 영향력에 대해 말하는 메타 영화이다.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콘텐츠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글로벌한 소구력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극적 완성도와 화제성이 탄탄한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애마’는 ‘애마부인’ 촬영 현장 안팎을 넘나들면서 제작자와 감독, 배우 등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내부 갈등, 그리고 당대 권력과의 갈등과 야합의 현장을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고 때로는 희비극적으로 그려낸다. 작품 속 ‘애마’의 감독이 자신이 만들려는 영화가 ‘에로 그로 논센스’ 영화라 외치듯이 스크린 안팎의 희비극적 상황을 그려내는 이해영 감독의 ‘애마’ 역시 ‘에.그.논’이라는 전대미문의 괴짜 장르에 수렴된다.
돈을 벌려는 제작자와 예술을 하려는 감독, 배우로서의 존엄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배우 등 각자의 역할과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충돌의 막장극 속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톱배우 정희란과 신인배우 신주애의 경쟁을 넘어선 연대와 자매애이다. 여배우를 성적으로 착취, 소비하는 사회와 산업 현장에서 ‘*년’ ‘**년’이라 욕먹으면서도 ‘그래 나 *년이다. 어쩔래’ 식의 깡으로 예술과 자신을 지킨 그녀들의 모습은 깊고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된다. 드라마 엔딩부 대종상 시상식에서 실제 1대 애마인 ‘안소영’이 등장해 자신의 목소리로 소감을 말하는 장면에서 감동은 정점에 이른다. 그것은 한 시대에 대한 생존자의 증언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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