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8일 오전 찾은 울산시 북구 매곡동의 기박산성 의병역사공원. 기박의 한자식 표현인 ‘기령(旗嶺)’ 글자가 새겨진 상징석 뒤로 붉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상징석 왼편에는 연면적 443㎡, 2층 규모의 건물이 있었는데, 울산 의병의 발자취를 알리는 전시관과 카페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1층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2층 카페를 거쳐 1층 전시실(34.3㎡)로 내려가 보니, 불은 꺼져 있었고 실내는 어둑했다. 바닥은 물이 샌 듯 얼룩져 있었다. 전시물이라고는 18명의 의병 이름과 일본군과의 전투를 그린 상상화, 기박산성과 의병에 대한 간략한 설명판이 전부였다. 카페 관리인은 “(여기는) 볼 게 없다. 찾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불은 켜둬야 해서 잠시 내려왔다”고 말했다. 카페 앞 주차장에서 만난 40대 한 관광객은 “카페 말고 전시관이 1층에 있다는건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울산의 의병정신을 기리겠다며 개관한 지 3년이 된 기박산성 의병역사공원이 여전히 교육과 체험의 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박산성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울산 출신 무신 제월당 이경연(1565~1643)을 중심으로 의병이 봉기한 곳이다. 의병들은 이곳에서 주둔하며 왜군과 전투를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기록은 제월당의 문집 ‘제월당실기’에 전한다.

울산 북구는 이를 기리기 위해 2022년 사업비 31억원을 들여 기박산성 의병역사공원을 조성했다. 8640㎡ 규모의 공원에는 호국광장, 의병이야기길, 데크로드 등이 들어섰고, 전시실과 카페가 마련됐다.
그러나 “볼 게 없다”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구는 지난해 2월 1층 로비까지 포함해 전시공간을 늘리고 의병 활동사와 사진 자료를 보강했지만, 여전히 설명 자료 위주의 단조로운 전시에 그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둘러싼 논란이다. ‘제월당실기’는 이경연이 생전에 남긴 기록이 아니라 후손이 1909년 편찬한 것으로, 날짜와 인물 기록이 다른 사료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후손이 조상을 부각하기 위해 내용을 꾸몄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허영란 울산대 교수(역사문화학과)는 “사실 여부가 불확실한 기록에 근거해 시설을 세우면 특정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는 위험이 있다”며 “지역 역사를 알리려면 무엇보다 콘텐츠의 깊이가 중요하다. 건설비용에 치중하다 보니 깃발만 세운 전시관이 되고, 시민들에게 외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북구 관계자는 “임진왜란 당시 울산 사람들의 이야기 등 시설의 콘텐츠와 공원 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용역을 진행해 시설의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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