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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 세계관 너머의 존재들… "나만의 한계 넘은 이야기 담았죠"

입력 : 2025-09-02 20:55:53 수정 : 2025-09-02 20:55:52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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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 낸 SF 스타작가 김초엽

트랜스휴먼·소리 수집가 등 소재
최근 발표한 중·단편 7편 엮어내

표제작은 한 몸에 두 개의 자아가
한 사람을 사랑해 겪는 갈등 그려

양자역학 세계 속의 존재들 다룬
‘달고 미지근한 슬픔’… 中서도 인기
“차기작은 인간의 믿음 관해 쓸 것”

“작가마다 ‘이건 내가 쓸 수 있어’ 혹은 ‘쓸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한계의 범위가 있어요. 이번 단편집에는 제 경계를 조금씩 넘어선 작품들이 담겼습니다. 쓸 수 없다고 여겼던 이야기를 써냈다는 성취감이 커요.”

첫 작품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 허블)으로 화려하게 데뷔해 한국 SF문학 새 역사를 이끈 소설가 김초엽(32)이 지난달 세 번째 작품집 ‘양면의 조개껍데기’(래빗홀)로 돌아왔다.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를 펴낸 소설가 김초엽(32)은 지난달 2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SF를 쓸 때 과학 연구를 하는 것과 비슷한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이 글이 될 수 있으니 삶이 가치로 충만한 느낌”이라며 “직업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웃어 보였다. 남제현 선임기자

책에는 2021∼2025년까지 발표된 중·단편 7편이 수록됐다. 집필 시기는 제각각이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양면성’이다. 한 몸에 깃든 두 자아가 동일한 대상을 사랑하며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 단편 ‘양면의 조개껍데기’가 표제작으로 선정된 것은 이 주제를 잘 드러낸다.

작가는 “우리는 세상을 범주화하고, 모든 것을 이분화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며 “뇌의 에너지를 최소화하려는 인간의 본능에 따른 전략이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실은 많은 것이 서로 침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흰색과 검은색이 경계면에서는 서로 스며들어 다른 색깔을 형성하는 것처럼”이라고 설명했다.

수록작 ‘고요와 소란’, ‘달고 미지근한 슬픔’, ‘비구름을 따라서’는 작가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느낀 작품들이다. 세 편 모두 ‘세계에 대한 탐구’를 주제이자 형식으로 삼았다.

‘고요와 소란’은 ‘차원의 거미줄’에 걸린 사람들이 갑자기 사물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이야기다. ‘우주의 소리 수집가’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듣기’가 얼마나 주관적인 행위인지를 대담하게 드러낸다. 그는 “이 작품을 쓴 후 소리에 대한 나의 인식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소리를 듣는 행위는 개인의 배경지식과 인지에 크게 영향을 받죠. 평소에는 인식하기 어려운 점이지만, 독자들께 새로운 생각의 통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유기체 몸이 아닌 큐비트(양자 컴퓨터 연산 단위) 몸의 세계를 그린 ‘달고 미지근한 슬픔’은 인간 신체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유에서 출발했다. ‘몸’은 김초엽이 초기작부터 꾸준히 다뤄온 주제이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다. 그는 “양자역학은 일상에서도 자주 언급되지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며 “완전한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에 가까운 감각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이 작품은 한·중 SF 작가 6명이 ‘몸’이라는 주제로 쓴 단편 6편을 엮은 앤솔러지 ‘다시, 몸으로’(2025, 래빗홀)에 앞서 수록됐다. 김초엽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번역본으로 2023년 비중화권 작가 최초로 중국 양대 SF 문학상인 은하상과 중국성운상을 모두 수상한 중국 내 인기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앤솔러지로 그의 문학 세계는 중국에서 또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비구름을 따라서’는 SF 장르에 대한 메타픽션으로 읽을 수 있다. 같은 설정, 같은 구상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구상해보다 오랜 고민 끝에 완성한 노작(勞作)이다.

또 다른 수록작 ‘수브다니의 여름 휴가’는 트랜스휴먼과 비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담았다. 이는 김초엽의 초기작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관심사이기도. 그는 “인간이면서 기계인 존재들에 대한 관심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그 메커니즘까지 들여다본 작품은 없었다”며 “그 작동 원리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원리를 파고들다 보면, 자연스레 철학적인 질문들이 파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믿음’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믿음’이라고 하면 흔히 종교를 떠올리지만,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조차 각자의 믿음을 갖고 있죠. 인간은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서, 그 빈 공간을 막연한 믿음으로 채우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도 이 세계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인간이 가진 이런 한계를 인정하고, 그 믿음을 어떻게 공동의 체계로 바꾸어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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