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재판 관련 문서를 발췌·번역한 총서가 발간됐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조사·등록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 외에도 확인되지 않았던 인물들의 활동 기록과 판결 사례가 대거 담겨 있으며, 조선 후기 사법제도 변화를 보여주는 사료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산하 동학농민혁명연구소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한 법부(法部) 기안 가운데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재판 관련 문서를 발췌·번역해 ‘동학농민혁명 신국역총서 17’을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

법부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계기로 조선 정부가 단행한 갑오개혁 이후 형조를 대신해 사법제도를 총괄한 중앙기관이다. 기안(起案)은 1895년 5월부터 1905년 12월까지 법부가 군부 등 타 부처와 주고받은 문서, 재판소 지시·통보 자료, 국왕 보고 문건 등을 묶은 기록이다.
이번 총서에는 동학농민군과 관련된 재판 자료가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설치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 회복 심의위원회가 조사·등록한 3973명 외에도,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수많은 참여자의 활동 기록과 판결 사례가 대거 담겨 있어 주목된다.
자료에 따르면 혁명 이후 ‘동비여당(東匪餘黨)’으로 규정된 인물들의 지속적 활동, 체포·처형 과정, 지도부의 활동, 서학(西學) 투탁자와 영학당(英學黨) 검거 및 수사 기록, 처벌 수준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검사국 기안은 용담의 김낙삼 등 49명, 형사국 기안은 청주의 오일상 등 16명, 사리국 기안은 고창의 김재호 등 64명의 동학농민군 참여자로 등재되지 않은 새로운 인물들의 활동상도 알 수 있다.
판결에는 대명률(大明律) 제사편(祭祀編)의 금지사무사술조(禁止師巫邪術條)’, ‘모반대역조(謀反大逆條)’ 등 법률 조항이 주로 적용됐고, ‘동도죄(東徒罪)’와 같이 법적 근거가 없는 죄목으로 처형된 사례도 포함돼 있어 당시 국가권력의 탄압 양상을 보여준다.
금지사무사술조는 일체의 좌도(左道)로 정도를 어지럽히는 술법을 부리거나, 도상(圖像)을 은밀히 보관하거나, 향을 피워 무리를 모으거나, 밤에 모였다가 새벽에 흩어지거나, 겉으로는 착한 일을 하는 척 꾸미고 인민을 부추겨 현혹시키는 수범과 종범에 관한 법률이다. 모반대역조는 모반을 공모한 자는 수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능지처사(凌遲處死)한다는 내용이다. 일찍이 동학사상을 창시한 교조 최제우는 1864년 이 조항을 적용받아 대구 감영에서 처형됐고, 2세 교주 최시형도 같은 조항의 ‘수범(首犯)’에 관한 율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를 통해 동학교도와 농민군의 관계, 혁명 지도체계, 조선 말기 사회 혼란 양상까지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평가다.
김양식 동학농민혁명연구소 소장은 “그동안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던 재판 기록을 발굴해 번역·공개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 연구의 외연과 깊이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역사적 사실을 보다 입체적으로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학농민혁명 신국역총서 17은 동학농민혁명 사료 아카이브(www.e-donghak.or.kr)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