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 무대에는 한 번도 오른 적 없는 K팝 그룹 두 팀이 글로벌 음악 차트를 점령했다. K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앨범은 미국의 권위 있는 대중가요 잡지인 빌보드의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3주 연속 순위를 끌어올리며 지난 19일(현지시간)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발매 4주차인 이번 주엔 5위를 기록했다. 지난주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엔 ‘케데헌’ 삽입곡이 6개나 올랐다.
지난달 20일 넷플릭스에서 개봉과 함께 글로벌 시청률 1위에 오른 케데헌은 악령으로부터 인간세계를 지키는 인기 걸그룹 헌트릭스와 악령의 부하인 신인 보이그룹 사자보이즈 간 대결을 그리는데, K팝 노래로 구성된 뮤지컬 형식도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극 중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과 사자보이즈의 ‘유어 아이돌’은 미국 스포티파이의 스트리밍 기준 ‘데일리 톱 송’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핫100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3위)도 못 이룬 성과다.
가상 아이돌은 오프라인 무대도 넘본다. 가상 걸그룹 이세계아이돌은 지난 5월 서울 시내 최대 규모의 실내 공연장인 고척스카이돔 무대에 섰고, 2023년 2월 데뷔한 플레이브는 다음 달 15∼17일 가상 아이돌 최초로 톱스타만 설 수 있다는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3일에 걸쳐 단독 콘서트를 연다.
이들 가상 아이돌의 흥행은 K팝이 인공지능(AI)과 같은 새로운 참여자들과 씨름하면서 지평을 넓힌 결과다. 헌트릭스나 사자보이즈, 플레이브의 노래는 AI 목소리가 아닌 실제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이들의 동작 하나하나는 AI 기반 모션 캡처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연을 송출해도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기술 발전에 크게 기대고 있다. 더구나 가상 아이돌은 잠도 자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늙지도 않으며 사생활 논란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인간 아이돌을 키우기보다 투자 비용이 적고 문턱이 낮다 보니 다양한 아티스트의 발굴도 기대해봄 직하다. 다만 ‘수년에 걸친 혹독한 연습생 생활을 버틴 악바리’와 같은 인간적인 서사를 기대할 수 없는 건 씁쓸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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