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 평가체계에서 소아 중증질환 입원 환자 카테고리를 별도로 설정해 질환자 기준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어디 의견을 들으신 건가요?”
“17개 학회 의견을 들었습니다.”
“성인 중심의 학회 얘기만 들으니 소아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지난 4일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열린 대한소아청소년외과의사연합 심포지엄에서 설전이 오갔다. 보건복지부가 소아 중증질환과 관련해 “신경을 쓰고 있다”는 취지로 언급한 내용에 연합 회원들이 곧바로 반박한 것이다.

이 짧은 설전은 의료계의 ‘소아 영역’ 소외를 잘 보여준다.
소아외과 자체는 ‘단일 진료과’가 아니다. 외과, 정형외과, 심장혈관흉부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이비인후과 등 수술과 관련한 각각의 진료과에서 전공의 과정 후 소아 분과를 세부 전공한 의료진을 통칭으로 일컫는 말이다.
당연히 소아외과와 소아정형외과 등은 전체 외과·정형외과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진료과 전체를 포괄하는 대형 학회 입장에서는 성인 수가라는 규모가 큰 이익을 앞에 두고, 소아 분야 지원을 요구하는 강경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대(성인 환자)를 위해 소(소아 환자)를 희생하는 셈이다.
대한소아외과학회, 대한소아마취학회 등 소아 학회도 있지만, 이들을 다 모아봐야 한 줌에 불과하다. 관련 의료진은 현재 소아비뇨의학과(29명)·소아흉부외과(33명)·소아외과(50명)·소아마취과(92명)·소아정형외과(41명)·소아안과(102명) 등 400여명에 그친다. 이런 ‘소수’의 목소리는 정부 당국에 쉽게 닿지 못한다.
심포지엄을 지켜보던 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3’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생존자 8명 중 3명만 탈락하면 나머지 5명이 상금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규칙이 제시되자 주인공 성기훈을 제외한 6명이 모두 아기를 희생양으로 삼자는 데 동의한다. 이들은 “다수의 민주적인 결정”, “합리적인 선택”, “정답을 찾았다”라고 말하며, 엄마의 등 번호 222번을 물려받은 아기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정당화한다. 희화한 캐릭터들의 이런 대사는 시청자들의 실소를 자아낸다.
그러나 현실은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목소리 내기 힘든 소수라는 위치의 소아 의료는 성기훈 같은 방패막이가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소아 담당 의료진과 일부 중증·난치질환 환아의 부모가 애써 성기훈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병원 내 푸대접과 높은 소송 위험, 잦은 당직·응급 호출로 인해 의료진이 급속히 감소하면서 소아 의료 분야는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소아 전공을 기피하는 의료계, 약자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복지부, 성인 위주로 돌아가는 병원,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만 침묵하는 다수 등 모두가 ‘오징어 게임3’ 속 이기적인 참가자들과 다르지 않다.
이날 심포지엄의 문제의식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자본주의, 다수결, 효율성만으로는 소아 수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분당서울대병원 정형외과 박문석 교수)
우리가 사는 현실이 드라마 못지않고, 어찌 보면 드라마보다 더하기에 작고 여린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손해와 희생을 감내할 수 있는 ‘성기훈’이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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