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17일 하루에만 438.9㎜ 내려
2년 전 최고 기록 두 배 뛰어넘어
광주·고창·순천·천안 등도 최고치
2위 기록 경신지역도 6곳에 달해
난류 사라진 밤 야행성 폭우 잦아
산사태·홍수 대비 쉽지 않아 피해
전국 각지에서 쏟아진 비로 다수의 사상자·실종자와 재산 피해가 발생한 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짧은 시간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극한호우’가 내렸기 때문이다. 전국에서는 7월 일일강수량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지역이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피해를 키웠다.

20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국적인 극한호우는 닷새간 이어졌다. 16일 밤부터 17일 새벽까지 충남 서산 등 충청권을 중심으로 매우 강한 비가 내렸으며, 17일엔 전남 지역을 위주로 호우가 쏟아졌다. 19일엔 전남과 경남, 20일 새벽에도 경기도를 중심으로 물폭탄이 떨어졌다.
이창재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근 극한호우 원인에 대해 “13일 이후 한반도 북쪽의 절리저기압이 정체하며 차고 건조한 공기가 남하했고, 남쪽의 북태평양고기압에서 고온 다습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성질이 다른 두 공기가 강하게 충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차고 건조한 공기와 고온 다습한 수증기가 오랫동안 팽팽히 맞서면서 선형강수대(비구름 띠)를 형성해 이례적으로 많은 비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런 영향으로 7월 역대 최대 일일강수량 기록을 새로 쓴 지역이 다수 속출할 정도로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서산의 경우 17일 하루에만 438.9㎜의 비가 내려 2023년 7월14일(208.1㎜) 일강수량 최고 기록을 두 배 넘게 뛰어넘었다. 1939년부터 기상관측을 시작한 광주도 같은 날 426.4㎜로 7월 일강수량 극값을 경신했다. 이전 기록은 1989년 7월25일 내린 335.6㎜이다. 이 외에도 전북 고창(196.7㎜), 전남 순천(253.7㎜), 충북 서청주(240.3㎜), 충남 천안(301.1㎜), 전북 순창(332.1㎜), 경남 산청(289.2㎜) 등이 같은 날 최고치를 썼다. 경남 합천은 19일 280.1㎜가 쏟아져 이전 기록인 1987년 7월15일(213.5㎜)보다 더 많은 비가 내렸다. 기상청에 따르면 7월 일강수량 극값을 경신한 곳은 13곳에 달한다. 2위 기록을 쓴 곳도 6곳이다.

최근 비는 수십 년을 넘어 ‘200년에 한 번’ 내린 수준이었다.
17일 충청·전라·경상권에서는 200년 빈도의 비가 쏟아졌다. 충청권에서는 7월 역대 최대 일일강수량을 기록한 서산을 비롯해 세종(324.5㎜), 당진(310㎜), 천안 등이 200년 빈도의 일누적강수량을 보였다. 전라권에서는 광주, 함평(340.5㎜), 무안(311㎜)이 200년에 한 번 내릴 폭우가 쏟아졌다. 시간당 누적강수량을 따졌을 때도 산청은 17일 한때 시간당 101㎜가 내려 100년 빈도를 기록했다. 인천 옹진군 영흥도에는 19일 시간당 98.5㎜, 20일 경기 포천에서는 104㎜가 내렸는데, 이는 200년 빈도에 해당했다.
극한호우는 점차 뜨거워지고 있는 기후변화와 무관치 않다. 공기는 뜨거워질수록 수증기를 품는 양이 늘어나는데, 과거보다 물기를 많이 머금은 공기들이 늘어나 폭우로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동해와 서해 등 한반도 주변의 바다 온도가 지속해서 상승하면서 비구름의 재료가 되는 수증기를 끊임없이 공급하고 있다.

이번 여름철 나타난 극한호우에서 주의할 건 잠자리에 드는 밤에 낮보다 더 강한 비가 내리는 ‘야행성 폭우’가 잦았다는 점이다.
17일 충남을 비롯해 광주와 울산 등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새벽에 시간당 80㎜가 넘는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20일 경기 가평에서도 새벽 물 폭탄이 내리면서 산사태 등이 발생했다. 야간에 호우가 내릴 경우 시야 확보가 어려워 재난 대응이 어렵고, 집에서 취침하는 시간대인 만큼 산사태와 홍수에 대비하기 쉽지 않다.
야행성 폭우의 원인은 밤에는 난류가 없어지면서 강풍 길을 따라 수증기가 고스란히 유입돼 비구름대가 더 발달하기 때문이다. 낮 동안에는 지표면 부근 공기가 달궈지며 위로 상승해 난류를 형성하는데, 폭우 원료인 수증기를 수송하는 강한 바람이 난류에 막혀 내륙에 깊숙이 들어오지 못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