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의 의식주와 관련된 필수 생활물가가 주요국과 비교해 너무 높아 소비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물가로 지갑이 열리지 않으면서 내수가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생활물가는 지난 4년간 누적해 약 20% 가까이 올랐다.

한국은행이 18일 공개한 ‘최근 생활물가 흐름과 수준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시기인 2021년 이후 올해 5월까지 필수재 중심의 생활물가 누적 상승률은 19.1%로 소비자물가 상승률(15.9%)보다 3.2%포인트(p) 높았다.
팬데믹 기간 공급망 차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상 악화 등으로 식료품·에너지 물가가 크게 오른 데다가, 최근에는 수입 원자재가격과 환율 누적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가공식품 물가에도 반영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한국의 생활물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물가를 100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 식료품·의류·주거비는 각 156·161·123으로 집계됐다. 세계 주요국 평균을 큰 폭으로 웃돌 만큼 비싸다는 뜻이다.
영국 경제 분석기관 EIU 통계(2023년 기준)에서도 우리나라 과일·채소·육류 가격은 OECD의 1.5배 이상이었다.
높은 생활물가는 결국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체감 물가를 끌어올려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2021년 이후 가계의 명목구매력(근로소득)이 높은 물가 상승률을 상쇄할 정도로 충분히 늘지 못하면서 2021년∼2025년 1분기 중 평균 실질 구매력 증가율(2.2%)이 팬데믹 이전(2012∼2019년·3.4%)과 비교해 떨어졌다.
한은 설문조사에서도 올해 1∼4월 소비 지출을 늘리지 않았다는 응답자의 62%가 '물가 상승에 따른 구매력 축소'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생활물가 상승으로 가계의 체감 물가가 높은 수준을 지속하면 가계 기대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영향을 줘 중장기적 관점에서 물가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이날 함께 발표한 '가공식품·개인서비스의 비용 측면 물가 상승 압력 평가' 보고서에서는 가공식품·개인서비스 품목의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여도가 지난달 1.4%포인트(p)에 이르렀다고 소개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분의 74.9%가 가공식품·개인서비스 물가 상승 탓이라는 뜻이다.
가공식품·개인서비스 품목의 투입 물가 상승은 결국 시차를 두고 생산자가격(산출물가)과 소비자가격에 더 많이 전가된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은 "투입 비용 감소에 대한 산출물가·소비자가격 탄력성 분석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투입 물가가 떨어져도 가격이 내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주택시장 양극화 심화에 따른 수도권 집값 상승도 체감 물가를 올리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집값 급등이 수도권 가계의 주거비 부담을 높여 소비 여력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한은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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