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부 토스카나주에 있는 피사 성당은 모습이 참 독특하다. 육중한 돌기둥을 세우고 무겁고 단단한 돌덩어리로 벽면을 채웠다. 정면 입구들과 건물 옆 창문들도 아주 작게 만들어 마치 전투를 위한 요새처럼 보인다. 1062년 착공되어 1118년에 완공된 중세 시대 건축물로서 중세 신학 사상을 반영한 미술 작품이기에 그렇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유럽의 중세는 북유럽 게르만족의 민족 대이동으로 인해 전쟁과 약탈이 무성한 혼란기였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적 대부분이 파괴됐고 일부 교회와 수도원만이 온전히 남았다. 자연히 교회와 수도원이 학교이자 도서관 역할을 했고 성직자 중심의 문화가 지배하면서 종교미술이 유행했다.

전기인 6세기부터 11세기까지 교회는 게르만족들을 정신적으로 교화시켜 교회의 옹호 세력으로 자리 잡게 해야 했다. 그래서 초월적인 신의 세계를 강조하고, 인간의 행위를 신의 섭리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려 했다. 이 시기 미술작품은 감각적이며 세속적인 측면보다 정신적인 세계만을 강조하는 형태였다.
11세기에 봉건 국가들이 형성되면서 종교미술도 변화를 보이게 된다. 신의 나라나 교회의 절대적인 권위만을 내세울 수는 없었으며 국가라는 세속적인 권위도 인정해야 했다. 우리들의 실제적 삶이 정신적인 것뿐 아니라 악마적인 것과도 더불어 있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인간이 현실 속의 이것들과 싸우고 극복해야 한다고 보았고, 교회는 악의 침입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주는 장소라고 생각됐다. 이런 사상을 반영한 교회 건축 양식이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대표적인 건물이 피사 성당이다.
다시 피사 성당, 입구와 창문을 작게 만든 것은 악의 침입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준다는 의미에서였다. 건물 전면은 서쪽으로 향하게 했는데 매일 해를 빼앗아 가는 서쪽을 악의 근원이라 생각하고 건물 안으로 악마들이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건물이 십자가 형태로 지어졌는데, 신의 전지전능함을 사방으로 미치게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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