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연구회 초대회장인 박시환 전 대법관은 2016년 논문에서 대법원의 사건 부담 해소를 위한 대법관 증원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조치”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대법관 증원이 아닌 상고 제한을 통해 사건 수를 줄이고 전원합의체에서 심도 있는 법리 논쟁을 거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13명도 약간 많은 느낌이 든다. 전원합의 도중에 토론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 돌아가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고 회고했다.
물론 박 전 대법관의 진단이 유일한 해법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대법관 30명 증원법’ 처리 과정에는 최고법원으로서의 대법원의 모습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 설정이나 설계 철학이 전무하다. 일선의 한 부장판사는 “일단 현재 몸 상태가 어떤지 파악한 뒤에 대법관 증원이란 옷을 입혀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30명이란 숫자는 대체 어떤 계산에서 나온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내에선 상고허가제 도입과 하급심 강화를 통한 사건 감축 없이 대법관 수만 늘리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칫 통일적 법 해석과 사회적 방향 제시라는 정책법원 기능까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면 집무실 공간, 부속실 인력, 차량 지원 예산 등이 두 배 이상 필요하다. 대법원 청사 공간 부족으로 증축이나 이전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131명(법관 101명, 비법관 30명)인데, 대법관 증원에 따라 두 배 수준의 확충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하급심의 판사 부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한 부장판사는 “판사와 직원 등 전체 법원 인력규모와 시설이 늘어나지 않는 한 아랫돌을 위에 놓든, 윗돌을 아래에 놓든 모두 한시적 눈속임인 미봉책”이라고 지적했다. 상고심 구조 개편 없이 추진되는 대법관 증원 논의는 국민에게 신뢰를 얻기 어렵다. ‘보복성’ 내지 ‘사법부 장악’이라는 불필요한 의심을 자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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