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이 뭐죠?”
2022년 2월3일 열린 20대 대선 TV토론에서 에너지 전환을 놓고 논쟁이 오가던 중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RE100은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냐”고 묻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이같이 답했다. RE100은 기업 전력의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골자로 한 캠페인으로, 우리나라 기업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 무시 못할 압력을 현재까지도 행사해오고 있다. 방송 이후 윤 후보의 이 답변을 놓고 진영 간 설전이 한동안 오갔다. 민주당에선 “대선후보가 RE100을 모를 수 있나”라고 공세를 벌였고, 국민의힘은 “에너지 전문가가 아닌 대선후보가 그런 것까지 꼭 알아야 하냐”는 식으로 방어했다.

3년도 더 지난 일을 꺼낸 건 ‘대선후보가 RE100을 알아야 하는가’를 재론하기 위한 게 아니다. 우리 정치가 기후 문제를 다루는 수준이 딱 이 정도였다는 걸 짚기 위해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행사인 대선에서 양 진영은 그저 기후 문제를 ‘토막 상식’ 취급했을 뿐이다. 정치학자인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최근 한 간담회에서 이런 사실을 언급하며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는 기후 의제를 쟁점으로 다뤄본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정치는 기후 문제를 다뤄야 한다.
다른 미래 의제인 인공지능(AI)과 인구만큼이나, 명운을 건 진영 간 토론이 오가야 하는 게 기후다. 재난·식량·질병 등 리스크 배후에 기후위기가 있고, 그건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산업화 이후 ‘인간 활동’ 때문이라는 게 명명백백한 과학적 사실이다. 기후위기 완화를 위해 탄소중립이라는 과제가 던져진 것도, 기후변화를 단박에 멈출 수 없기에 적응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숙제가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모두 대대적인 자원의 재배치가 요구되는 일이고, 그걸 하려면 결국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이미 우리나라 시장과 시민사회는 정치에 기후를 요구하고 있다. 6·3 조기대선을 앞두고 경제5단체가 제언집을 주요 대선후보에게 전달했는데, 여기에 ‘성장을 추진할 동력’ 관련 5개 의제 중 하나로 탄소중립이 포함됐다. 프로젝트 그룹 ‘기후정치바람’이 지난달 전국 18세 이상 시민 4482명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새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진술문에 동의 의사를 밝힌 응답률이 62.3%나 됐다.
이제 정치가 답할 때다.
23일 오후 8시 21대 대선후보 사회 분야 TV토론에서 ‘기후위기 대응 방안’이 공약 검증 토론 주제 중 하나로 다뤄진다. 기후 문제가 대선 TV토론 공식 주제로 포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약발표(각 1분30초), 주도권토론(각 6분30초)을 더해 최소 32분은 각 당 후보들이 기후를 놓고 공방을 벌인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질이다. 빈곤한 공약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 평가받게 하고, 거창한 공약은 실현 가능성을 따져 ‘말잔치’를 경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RE100이 뭐죠?’ 시즌2는 더 이상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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