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귀환’, 그것도 압승을 통한 복귀는 미국 사회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확연히 건너갔음을 확인하게 했다. 8년 전 트럼프 당선인의 첫 백악관 입성 때 선거 결과에 모두가 충격받으면서도 ‘깜짝 이벤트’처럼 여겼다면 이번에는 다르다. 트럼프 1기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며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고 한 선언은 결과적으로 공허해졌다. 미국 민주당과 주류 언론, 엘리트 사회 등이 이번 대선 막판까지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트럼프의 존재감은 허상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트럼프의 재집권은 미국 우선주의, 미국 신 고립주의가 확실히 정착했다는 상징으로 읽힌다.
◆美 진보도 ‘소수자 우대 향한 반감’에 무력
트럼프 재선으로 한층 더 또렷해진 또 다른 미국 사회의 단면은 소수자 우대 정책에 대한 커지는 반감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전문가들의 예상이 빗나간 주 요인이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책 공약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분노, 공포’를 키워드로 소수자 정책을 파고든 점이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정구연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트럼프의 우세를 점치긴 했지만 상, 하원을 모두 가져간 것은 좀 예상 밖이고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며 “트럼피즘(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과정에서 생겨난 정치 현상 및 이념)이 공화당을 장악한 것을 넘어 유권자들에게도 이렇게 주류화될 수 있었다는 점에 놀랐다”고 말했다.

유권자 확보 면에서 트럼프 진영의 반이민 정책, 작은 정부, 남성 우월주의적 의제 설정 등은 카멀라 해리스 후보측의 다양성 강조 전략을 압도했다. 정 교수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외치는 민주주의 쇠퇴를 인정하더라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극단적인 지지층에서는 워크니스(wokeness·정치적 올바름에 천착하는 태도) 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하기도 한다”며 “이에 맞서는 민주당의 의제 설정 부족도 큰 패인 중 하나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나 남부 지역은 불법 이민자들이 급증하면서 더 이상 백인 남성이 우위를 차지하는 구조가 아니다. 이민자와 유색인종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도록 제도화 된 현 시스템에 저소득층 백인 남성의 분노는 쌓여왔고, 하던대로 다양성을 고수하는 민주당에 대해 우파 포퓰리즘의 반격을 유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의 불편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건드린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의 전략은 안이하고 부실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페미니즘 반감, 전통적 남성성 옹호…韓·美가 닮았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쪽이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등을 공략해 20대 남성 표심을 잡은 것이 승리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왔다. 진보주의로 결집하는 또래 여성들과 반대로 이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전통적 남성성 옹호, 낙태권 반대 입장 등을 바탕으로 트럼프 지지층에 흡수됐다. 트럼프 당선인의 막내아들 배런 트럼프(18)는 젊은 남성이 모이는 커뮤니티나 팟캐스트 등이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유명 인터넷 게임방송 등에 트럼프 당선인을 출연하도록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한국에서도 지난 대선 때 포착된 바 있다. ‘이대남’(20대 남성)을 중심으로 한 여성·소수자 대상 반감이 보수 유권자층 전반에 확산하면서 보수 후보의 승리로 이어졌다는 점이 비슷하다. 상대 진영에서 이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전략을 찾지 못했다는 면에서도 유사점이 보인다. 당위를 외치는 것을 넘어 유권자층을 확장할 실질적인 메시지를 내는 부분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난,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진보진영의 이런 무력함은 중도층을 빼앗기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이 벌인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후 이어진 탄핵 정국에 나타난 20∼30대 성별 대립 양상은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 경고하는 바가 크다.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 공약을 필두로 안티 페미니즘 정서를 앞세워 이대남을 공략하는 대선 전략을 성공시킨 권위주의적 대통령의 폭력성과 파괴성이 결국 나라를 뒤흔드는 위험으로 현실화되고 말았다는 점에서다.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를 주도한 것은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온 20대 여성이었다. 서울시 생활인구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첫 주말인 지난해 7일 성인 인구 중 탄핵 찬성 집회에 가장 많이 참여한 그룹은 20대 여성(17.7%)이었고, 가장 낮은 참여는 20대 남성(3.3%)이었다.
이후 이런 대비는 윤 대통령 관저, 광화문 등에서의 탄핵 찬성 vs 탄핵 반대 집회 주요 참가자 양상으로 이어졌다. 서부지법 폭동을 비롯해 점점 과격해지는 탄핵 반대측 집회에 20∼30대 남성이 주축이 되는 현상에 대해 일각에서는 “탄핵 찬성 집회에 20∼30대 여성이 부각되는 것을 보며 안티페미니즘 정서로 뭉친 남성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안티페미니즘 정서의 기저에 놓인 권위주의·극우·파시즘 성향과도 무관치 않다고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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