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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만부 『난쏘공』 조세희 “지구에 살든 혹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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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2-21 07:30:00 수정 : 2024-02-20 16: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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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은 김이 밥상 위에 놓여 있던 밥과 국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을 앞둔 철거민 집에서 두고 세입자 가족과 함께 한 삼십대 남성이 밥을 먹고 있었다. 세입자 가족은 집이 헐리면 당장 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이들이었고, 남성은 잡지사 직원으로 취재 중이었다.

 

젊은 남자가 김을 가르며 국물을 뜬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던 순간이었을까. 갑자기 대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곧이어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이 점점 커져간 남성은 가슴이 두방망이질치는 것을 느꼈다. 철거반원들이 철퇴로 휘두르며 대문과 시멘트 담을 마구 쳐부수기 시작했다. 대문과 담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철거반원들이 집 안으로 독일 병정들처럼 들이닥쳤다. 밥과 국에선 이미 온기를 잃어버린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서울=뉴시스】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씨가 11일 오후 서울 종로 인사동에서 가진 기념문집 '침묵과 사랑' 출간 기자회견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서경리기자 sougr@newsis.com<관련기사 있음>

비상계엄과 긴급조치가 멋대로 내려지고, 하루 자고 나면 누군가 잡혀가며, 작은 목소리로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말만 해도 잡혀가서 고문 받고 갇히는 폭압의 시대였다. 먼저 잡혀간 누군가는 징벌방에서 쓰러져 가고, 노동자들은 짐승처럼 맞고 끌려가던 야만의 시기였다.

 

남성은 이날 취재를 나왔음에도 현장에서 철거반원들과 멱살을 잡고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싸움이 끝나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처음에는 슬펐고 나중에는 화가 났다. 난장이들의 처지도 안타까웠지만, 악이 선으로 전도되는 현실은 더욱 참을 수 없었다. “그때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이 내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었다.”(9쪽)

 

바로 2022년 작고한 소설가 조세희였다. 신문사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아직 작품 활동을 하지 않던 때였다. 좋은 작품을 쓸 자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통감하던 그였다. 틈틈이 당시 문단을 주름 잡던 이문구와 박태순, 황석영의 작품을 읽고, 석정남의 『불타는 눈물』이나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같은 노동자 소설도 읽었다. 주말이면 경인지역이나 구로동을 취재하기도 했다. 도시 빈민의 눈물과, 노동자의 땀과, 그리고 세상을 ‘견디는’ 사람들의 사랑⋯.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래, 글을 쓰는 거야. 잡지사로 돌아오는 길에 회사 부근 문방구에 들러서 모나미 볼펜 한 자루와 작은 노트 한 권을 사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훌륭한 작가가 아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리라. 조세희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사무실 근처 다방이나 한가한 곳을 찾아 틈틈이 썼다. “‘유신헌법’ 아래서 나는 일찍이 포기했던 소설을 한 편 한 편 써나갔다.”(10쪽)

책은 판매금지 되면 안된다, 꼭 소수의 독자에게라도 전파돼야 한다. 인간의 기본권이 말살된 ‘칼의 시대’에 작은 ‘펜’으로 작은 노트에 글을 쓰면서, 그는 생각했다. 비록 작품은 작은 덩어리에 불과하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파괴를 견디고’ 따뜻한 사랑과 고통 받는 피의 이야기로 살아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1975년 「칼날」을 시작으로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이르기까지 서울 낙원구 행복동에서 철거당한 도시 빈민의 삶을 그린 연작을 차례로 발표했다. 조세희의 ‘난장이 연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93쪽)

 

연작집의 표제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사는 난장이 가족의 이야기다. 난장이 가족은 노비의 후손으로 키 117cm, 몸무게 32kg에 불과한 난장이 김불이(金不伊)와 아내, 아들 영수와 영호, 딸 영희 다섯 명으로 구성됐다. 어느 날, 난장이 가족은 아파트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뒤 철거 계고장을 받게 된다. 아버지가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자 영수와 영호는 인쇄공장에 나가기도 한다.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우리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불황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힘껏 일한 다음 노사가 공평히 나누어 갖게 될 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우리는 그 희망 대신 간이 알맞은 무말랭이가 우리의 공장 식탁에 오르기를 더 원했다.”(122쪽)

 

가족은 투기업자에게 입주권을 팔지만 제몫으로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었다. 집이 철거당한 뒤, 거리에 나앉을 처지로 내몰린다. 투기업자를 따라 가출했던 영희는 업자의 금고 안에서 입주권을 되찾아 오지만, 아버지가 공장 굴뚝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소식에 절규한다.

 

“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울음이 느리게 나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울지 마, 영희야.’ 큰오빠가 말했었다. ‘제발 울지 마. 누가 듣겠어.’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큰오빠는 화도 안 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그래. 죽여 버릴게.’ ‘꼭 죽여.’ ‘그래. 꼭.’ ‘꼭.’”(161쪽)

 

작품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재개발로 인해 행복동에서 쫓겨나는 난장이 가족의 삶과 좌절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불평등, 거악의 부조리, 복수의 병리적 세태를 환기시킨다. 조세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롯해 열두 편으로 연작을 마무리 짓고 1978년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을 펴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조 작가의 별세 직후 SNS에 올린 글에서 “1970년대의 한 노동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를 고통스럽게 전하고 있는 한 작가의 분노와 부끄러움의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난쏘공」엔 노동자의 삶과 생각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과 생각을 곁에서 바라보고 같이 생각하는 작가의 아픔과 생각도 같이 들어있고, 그 두 삶과 생각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작렬하는 어떤 것이 들어있다. 분노와 부끄러움이 그것이다⋯ 「난쏘공」은 1970년대의 한 노동가족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를 고통스럽게 전하고 있는 한 작가의 분노와 부끄러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소설의 더듬는 듯한 짧은 호흡은 곧 조세희 자신의 자의식의 떨림이 만든 것이었다.”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지지를 받아온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최근 판매부수 150만부를 돌파했다. 1996년 100쇄, 2005년 200쇄, 2017년 300쇄를 기록한 끝에 올해 2월 325쇄를 찍었다. 무려 46년 만이다.

 

문학과지성사에 이어 2000년부터 소설집을 출간해온 출판사 ‘이성과힘’은 이에 판형과 표지를 새로이 하고 현대 표기법에 맞게 일부 단어와 문장을 수정한 개정판을 새롭게 출간했다. 출판사는 광고나 TV프로그램의 캠페인 없이 이룬 성취라는 점에서 “문학적·사회적 가치를 증명하는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번 개정판에는 문학평론가 김병익(1978), 우찬제(1997년)의 기존 해설에 더해 언론인 이문영의 해설을 추가했다.

 

연작집을 여는 단편 「뫼비우스의 띠」는 일종의 액자소설로, 한 수학 교사가 한 해 마지막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굴뚝 청소를 마친 깨끗한 얼굴의 아이와 더러운 아이 중에서 누가 더 먼저 씻을까라고. 교사는 학생들의 상식적 대답의 허점을 지적한 뒤 뫼비우스 띠 이야기를 꺼낸다. 액자 속에는 헐값에 입주권을 팔았다가 속은 꼽추와 앉은뱅이의 복수 이야기가 펼쳐진다. 교사는 다시 학생들에게 말한다.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32쪽)

 

소설집에는 중년 여성 신애의 눈에 비치는 세상을 그린 「칼날」을 비롯해, 난장이 가족의 삶과 젊은이들을 대비한 「우주 여행」, 사회에 나와 이상과 현실로 갈리는 젊은이들을 그린 「육교 위에서」, 기업가 손녀 경애와 재수생 윤호의 엇갈린 이야기를 담은 「궤도 회전」, 공장에 취직하지만 여전히 빈민굴에 살아야 하는 난장이 가족을 그린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공장 노사협상 장면이 펼쳐지는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숙부를 찔러 죽인 영수를 비롯해 은강 그룹 손자 경훈의 눈에 비친 세상을 그린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등이 담겼다.

 

연작집을 닫는 작품인 「에필로그」 역시 도입작 「뫼비우스의 띠」와 대구를 이루면서 액자식으로 전개된다. 수학 교사는 예비고사 수학 성적이 떨어진 책임을 지고 윤리 과목을 맡게 됐다고 알린다. 액자 속에는 약장수를 따라 나섰다가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은 꼽추와 앉은뱅이가 사장을 찾아 복수하려 나서지만 영수가 죽어 나왔다는 감옥을 발견하고 복수를 포기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교사는 좋은 글을 못 쓰고 울기만 한 자신을 이해해 달라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은 혹성으로 우주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는 말을 남기고 교실을 나선다.

 

“나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무엇을 글로 써서 제군에게 읽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 줄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제군의 창조력을 억제하거나 아예 없애 버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그들은 우리의 부분적인 실태가 폭로되는 것도, 어떤 개혁이 이뤄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한 주전자의 커피와 한 말의 술을 마시면서 좋은 글을 못 쓰고 울기만 한 나를 이해하라.”(362쪽)

 

소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자본과, 파렴치한 악덕업자과, 권력의 부도덕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아울러 거악에 잔혹하고 폭력적인 복수로 맞서려다가 뫼비우스 띠처럼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가해와 피해를 구별할 수 없게 되는 모순 역시 서늘하게 묘파한다. 소설이 그린 이들 모순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점에서, “더 이상 난쏘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1996년)는 작가의 고민이 읽히기도.

 

특히, 학생들에게 단순한 지식 너머의 고민과 통찰의 가능성을 제시하려고 하는 작품 속 수학 교사나, 독립운동가의 손자로 노동 운동가인 지섭은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학 교사가 상식과 허위가 가진 잘못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그럼에도 대안의 지난함과 난해함을 고민하며, 좋은 글을 쓰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혹성으로 떠나겠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명문대 재학 중 퇴학당한 지섭의 경우 난장이네 집이 철거되자 철거반원들에게 항의했다가 구타당한 후 쫓겨나거나 이후 노동 운동에 가담해 조합을 만들고 영수를 돕는 모습 등에서 조세희의 체취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시골의 어머니와 떨어져 홀로 서울 친척집에 얹혀살았다. 친구도 많지 않았다. 세상이 자신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마음 어디에선가 느꼈을 터였다. 중학생은 운동을 좋아해 해질녘까지 운동을 했다. 운동을 마친 뒤 늦게 학교 ‘적십자문고’를 찾았다. 가벼운 책이나 인기 있는 책은 거의 없고, 남은 책은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등의 고전뿐이었다.

<사진->민족문학작가회의 기자회견 참석한 소설가 조세희 씨 지난 11월 WTO 쌀 비준안 처리 관련 반대집회 도중 사망한 故 전용철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 병원 영안실서 7일 오후 열린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기자회견'에서 183명의 작가를 대표해 소설가 조세희 씨가 사회 양극화 해결을 촉구하며 의견을 말하고 있다./황광모/사회/ 2005.12.7 (서울=연합뉴스) hkmpooh@na.co.kr

중학생 조세희는 도스토옙스키의 『까마라조프의 형제들』을 빌려 읽었다.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감동을 느꼈다. 이어서 『죄와 벌』을 찾아 읽었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역시 탐독했다. 조세희가 처음으로 읽은 소설들이었다고, 그는 나중에 회고했다. 소설가 조세희의 씨가 뿌려진 시기였다.

 

“그 뒤에는 그분들의 작품을 다시 읽지 않았지만, 중학교 2학년 1학기에 읽은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는 제 가슴을 뻥 뚫어 관통해 버렸다. 죽은 지 100년, 200년이 가도 여전히 문학사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두 분의 명작들과 그 뒤에 읽은 몇 권의 책들로, 문학을 했다. 중학교 때 만날 수 있었던 10권 이내의 황금 같은 책들이 저의 내면에 소설가로서의 바탕을 형성해 주었다.”

 

“너 어느 대학 갈래?” 고교 시절, 당대의 소설가 김동리로부터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학교에 많이 출석하진 않았지만 이미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을 품었던 그였다. 김동리는 자신을 찾아온 그에게 물었다. 고교생 조세희는 말했다. “친구가 서울대에 가자고 해서 참고서를 샀습니다.”

 

“앞으로 글을 안 쓸 생각이냐?” “쓸 작정입니다.” “작가로서 대성하려면 아무래도 서울대보다는 서라벌예대 쪽이 더 낫지 않겠느냐?” 김동리를 만약 서라벌예대에 진학하면 장학금과 용돈도 주선해 보겠다고 제안했다. 제안에 따라서 서라벌예대로 입학했다. 서라벌예대 2년 과정을 마친 뒤에는 소설가 황순원의 제안으로 다시 경희대 국문과로 편입했다.

 

‘문학청년’ 시절, 그는 가슴만 뜨거운 게 아니라 사람과 사안을 깊이 있고 냉철하게 들여다볼 줄 아는 탐구자였다. “1961년 문학 강의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문청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진심을 바탕에 딛고 깊게 보는 탐구자였다”고, 원로 소설가 이건청은 조 작가 별세 직후 SNS에 올린 글에서 회고하기도 했다.

 

어느 날, 평소 제주도에 놀러가고 싶어 했던 한 친구가 불쑥 찾아왔다. 친구는 자신의 여자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떠날 생각인데, 신춘문예에 응모해 당선되면 상금으로 함께 가자고 말했다. 친구의 응모예정작을 읽어보니 당선이 난망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어머니가 작고한 뒤 마흔 장쯤 써놓은 원고를 밤새 아흔 장으로 늘려 응모했다.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난 조세희는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돛대 없는 장선(葬船)」으로 등단했다. 이때 그의 나이 만 스물 셋. 십 년 넘도록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75년 ‘난쏘공 연작’의 하나인 「칼날」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한 그는 연작집 『난쏘공』 이후 소설집 『시간여행』(1983)과 사진 산문집인 『침묵의 뿌리』(1985) 등을 펴냈다. 1990년대 잡지에 연재한 장편소설 『하얀 저고리』는 원고를 매만지기만 하다가 끝내 발간하진 않았다. 동인문학상과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97년 인문사회 비평잡지 『당대비평』을 창간하기도 했다.

 

“아! 잠깐만 시간을 주세요. 마지막으로 짧게 몇 마디만 하겠습니다.” 서울 교보생명빌딩에서 난쏘공 출간 30주년을 맞아 그의 문학세계를 되짚어보는 기념문집 『침묵과 사랑』 헌정식 및 낭독회가 끝나갈 무렵,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사람들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이명박정권이 맹위를 떨치던 2008년 11월 14일의 일이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절대 냉소주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후배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피하지 마십시오. 현대 사회에서 모든 자본들은 사람들에게 바보가 되라고 강요합니다. 냉소주의는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 갑니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전 여러분 세대에 많은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싸우지 않는다면 죽어서 지하에 있다가도 제가 싸우러 나올 것이다. 그런 일이 없길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 또 이후의 세대가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금은 난장이일지라도 결코 절망이나 냉소에 빠지지 말라고 위로한 소설가 조세희, 마지막까지 부조리한 자본과 권력에 맞서 싸우라고 외쳤던 인간 조세희. 2022년 또 하나의 별이 된 그는, 『난쏘공』의 연작소설 「에필로그」에서 수학 교사의 입을 빌려서 이미 자신의 운명을 우리에게 예고했는지 모른다. 마치 유언처럼. 예언처럼. 

 

“서쪽 하늘이 환해지며 불꽃이 하늘로 치솟으면, 내가 우주인과 함께 혹성으로 떠난 것으로 믿어 달라. 긴 설명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것은 떠나는 순간에 무엇을 대하게 될까 하는 것뿐이다. 무엇일까? 공동묘지와 같은 침묵일까? 아닐까? 외치는 것은 언제나 죽은 사람들뿐인가? 시간이 다 되었다. 지구에 살든, 혹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이다.”(363-364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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