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박람회인 ‘첼시쇼’서
韓 토종식물 300여종 심어 눈길
10여년 만에 세 번째 금상 수상
“韓 정원 미래가치 각인시켜 뿌듯”
“Brilliant!(멋져요!)”
지난 5월 23일 영국 ‘첼시 플라워쇼(첼시쇼)’를 찾은 찰스 3세 국왕이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세계 최대 정원박람회에서 그가 찬사를 보낸 작품은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47) 작가가 지리산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정원이다. 황 작가가 조심스레 작품에 대한 의견을 묻자 찰스 국왕은 포옹으로 경의를 표했다. 세계인의 이목을 끌며 11년 만에 첼시쇼에 복귀한 황 작가는 쇼가든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작품 중 ‘약초 건조장’(드라이타워)은 찰스 국왕에게 갈 계획이다.

황 작가의 첼시쇼 금상 수상은 올해가 세 번째다. 2011년 ‘해우소:근심을 털어버리는 곳’으로 아티즈 가든 부문에서 금상과 최고상을, ’2012년 ‘DMZ:금지된 정원’으로 쇼가든 부문 전체 최고상(회장상)과 금상을 받았다.
“10년 전 첫 전시를 위해 찾은 영국의 어느 곳에선 한국을 여전히 전쟁 중인 나라로 알고 있더라고요. 한국정원에 대한 인식은 아예 없었죠. 첼시플라워쇼에서의 세 번의 수상을 통해 한국정원과 한국정원의 미래가치를 각인시켰다는 기대를 합니다.”
황 작가는 이달 초 서울 aT센터 에이팜쇼에서 식물정원으로 한국 관람객과도 만났다. 그는 육송을 재료로 한 나무온실인 ‘아낌없이 주는 정원’을 전시했다. 그는 “지붕과 벽이 없는 목조 한옥 안에 정원을 꾸려 정원과 우리의 삶이 경계 없이 이어져 있음을 표현했다”고 했다.

작가는 의도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주목한다. 첼시쇼에 출품한 작품도 ‘원시성의 회복’ ‘인간과 자연의 공생’ 메시지를 담았다.
황 작가는 27일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첼시쇼는 단순한 꽃 박람회가 아니”라며 “왕립원예협회의 말처럼 세계에서 가장 고상한 경제활동이자 문화활동으로 살면서 중요한 미래가치가 무엇인 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복귀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정원이 좀 더 나은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지는 과정에 함께 한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황 작가가 첼시쇼에 출품한 작품은 지리산 동남쪽 약초 군락이 모티프다. 그는 인간과 자연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지리산의 약초환경으로 이야기했다.
가로 10m, 세로 20m 크기의 땅에 지리산에만 있는 지리바꽃, 멸종위기종인 나도승마, 산삼, 더덕 등 토종식물 300여종을 심었다. 곳곳에 배치한 200t 바위들 사이엔 지리산 젖줄인 개울이 흘렀다. 약초꾼들의 건조장을 참고해 만든 5m 높이의 탑을 중앙에 세워 지리산의 야성적인 모습을 재현했다.

그는 “이번 (첼시쇼) 전시 때 가장 인상 깊었던 표현이 ‘한국 정원은 움직인다, 흐른다’는 이야기였다”며 “한국의 산야가 갖고 있는 힘과 저력, 잠재력이 수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저 익숙한 환경과 재료를 가진 ‘운좋은 전달자’일 뿐이라고 했다.
작품 중 일부는 암센터인 영국 매기재단에 기부했다. 2015년 이후 긴 병마와 싸우면서 암환자들에게 더 나은 병원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결심이었다.
황 작가는 “몸이 아프자 나 자신과의 긴밀한 시간을 갖게 됐는데 바람의 움직임, 빛의 정도, 계절 등 자연의 변화가 인간의 정서에 어떻게 미치는 지 알게됐다“고 말했다.
황 작가는 내년 런던디자인페스티벌(LDF)에 초청받았다. 빅토리아앤앨버트뮤지엄(V&A)과 스트렌드거리에서 정원과 설치작업으로 한국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를 통해 지구 생태의 작은 한조각을 고민할 예정이다.
2025년엔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와 첼시쇼에서 콜라보 전시를 한다. 종의 보전에 대한 메시지와 우리가 현재 처한 자연환경에 대한 태도와 성찰을 전달한다.
영국 공연 예술의 발생지인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선 황 작가의 정원이 설치된다. 로열오페라하우스 측은 올해 첼시쇼가 끝난 후 황 작가에게 루프탑에 한국정원을 반영구적으로 전시하는 것을 제안했다. 작품 전시 시기는 조율 중이다.

황 작가는 “로열오페라하우스는 장소성이나 역사성, 문화성에서 영국 문화예술을 이끌어가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한국정원을 이곳에 설치하고 전시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문화, 한국정원문화에 대한 인식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영국의 공공장소에 일본·중국정원은 있지만 한국정원은 현재까지 없다. 로얄오페라하우스에 황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면 영국 내 처음으로 공공장소에 한국정원이 조성된다.
전남 곡성 출신인 황 작가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환경 미술 현장에서 일하다 정원에 관심을 갖게 됐다.
황 작가는 정원 디자이너를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사람’,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 ‘균열되고 상처난 곳에 새롭게 살아갈 힘을 부여하도록 돕는 사람’ 등으로 정의했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이다.
“우리의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지, 정원이라는 친숙한 방법으로 수만 가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봐요. 정원 전시를 통해 문화의 균형과 다양성을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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