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NA 제공
최근 종영된 드라마 ‘남남’에는 범죄 현장을 누비는 파출소 직원들이 자주 등장한다. 경찰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범죄 현장을 목격했는 지 묻고 다니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주인공인 순경 황용식(강하늘 분)의 활약상이 펼쳐졌다. 동네 곳곳을 누비며 ‘범죄와의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찰들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게 흔치 않다. 일상에서 경찰을 마주치길 바라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요즘 같이 강력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신림동 칼부림 사건에 이어 분당 서현역 난동 사건,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까지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에 시민들의 불안이 크다. 경찰청이 초강경 대응을 하겠다며 장갑차, 특공대원을 등장시켰지만 신림동 성폭행 치사 사건을 막지는 못했다. ‘흉악범죄 느는데...현장엔 순경 부족’(8월21일자, 조희연·김유나 기자) 기사는 만성적인 일선 현장의 경찰력 부족 문제를 짚었다. 국민들이 일상의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데도 이를 책임지는 최일선의 지구대, 파출소 인력은 전국적으로 ‘골고루’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20년 전 얘기인데 아직도 해결 안돼”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은 3만1623명. 정원(3만1559명)보다 오히려 64명이 많다. 하지만 일선 현장을 누비는 순경, 경사 등은 정원에 못 미쳤다. 근무중인 순경은 4909명으로 정원(9535명) 대비 절반이 결원이다. 순경 직급 현원은 전국 18개 시도경찰청 모두 정원보다 부족하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인천, 경기남·북부, 경남 등 7곳은 순경 직급에서 1000명 이상 결원이 발생했다.

서울의 한 파출소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지구대·파출소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20년 전부터 나온 얘기인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도대체 왜 그럴까. 현장 경찰과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기동대로 차출되거나 승진 기간이 빨라 일선 경찰 인력에 공백이 생기기 쉽고, 주취자 대응 등 ‘귀찮은 업무’로 지구대·파출소 기피 현상이 만만치않다는 것이다. 본지에 ‘내근·간부 위주 경찰조직 수술 시급하다’라는 제목의 칼럼(8월23일자)을 쓴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범죄학박사)는 고질적인 경찰의 인력 구조를 지적했다.
순경부터 부서장까지 5∼6개 계급 구조를 가지고 있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순경, 경장, 경사, 경위부터 치안총감까지 11개 계급으로 이뤄져있다. 바닥(하급 조직)이 평평한 피라미드형이 아니라 위로 치솟는 에펠탑형 구조다. 경찰 조직도 너무 쪼개져 있어 범죄를 막고 해결해야할 현장 인력보다는 내근, 간부급 인력이 더 많은 기형적인 조직이 됐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그래서 의경을 다시 뽑겠다구요?
일선 현장 인력 부족 문제가 부상하자 국무총리실이 내놓은 대책은 지난 5월 최종 폐지된 의무경찰(의경) 제도 부활 검토였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대략 8000명 정도의 의경 인력 확보안을 제시했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군 병력에서 빼와야 한다. 국군 정원 50만명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경 제도 도입은 방위력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더욱이 전두환정부에서 도입된 의경 제도는 국방 의무 명목으로 입대한 인력을 경찰 보조 업무에 파견하는 문제와 열악한 근무 환경 등으로 10여년에 걸쳐 올해 최종 폐지된 제도다. 이를 번복하는 것은 정책 일관성 훼손을 의식하지 않은 ‘손쉬운 결정’이다.
이 같은 비판이 일자 총리실은 경찰 인력배치 조정을 먼저 진행한 후 필요시 의경 제도 부활을 검토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25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총리실의 의경 재도입 검토에 대해 “쉽게 동의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가 늘어나고 여성을 겨냥한 성범죄가 포악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의경 제도 부활 논란은 번짓수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지금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건 범죄 사각지대를 찾아내고, 시민들의 신고·구호 요청에 즉각적으로 응답하고, 범죄자를 가차없이 진압할 ‘직업 경찰관’들이다.
P.S. 이윤호 박사에 물었습니다.
-일선 현장 인력 부족은 20년도 더 된 얘기라는데 왜 고쳐지지 않나.
“경찰위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이런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했다. 하지만 누구도 조직에 손을 대려고 하지않는다. 어느 조직원이나 승진되기를 원하고 계급은 연금, 월급과 연계돼 있다. 그걸 줄이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나. 그렇다면 월급, 연금을 계급이 아니라 근속연수와 연계시키면 된다. 모든 경찰관이 순경부터 시작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경위, 경감, 경정으로 경찰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봉, 권총으로 무장하고 순찰 도는 일도 안해본 경찰이 많다는 얘기다.”
-정부가 폐지한 의경 제도 부활을 검토하겠다는데.
“의경은 치안 보조자일 뿐이다. 그들한테 법집행 권한이 없다. 더구나 젊은이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군 병력에서 빼와야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나. 정확한 진단이 안되니까 비현실적인 대책이 나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인구 10만명당 경찰관 수를 보면 미국이 2019년 기준 242명, 영국이 2021년 기준 227명, 일본이 2017년 기준 235명, 우리가 2017년 기준 226명이다. 절대적으로 인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문제는 현장에서 도둑놈을 잡을 인력이 부족한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계급을 줄이고 내근 조직을 줄이는 등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먼저 강구해야한다. 계급이 지나치게 많은 ‘첨탑형’이나 지금처럼 중간(내근) 조직이 많은 ‘항아리형’이 아니라 현장 인력이 가장 많은 ‘부채꼴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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