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질 준비됐나요?”
최근 독서모임 토론을 위해 보게 된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년)라는 영화 포스터의 문장이다. 포스터는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보랏빛 톤이 지배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엔 마트 카트에 탄 어린 딸과 이마를 맞댄 엄마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행복한 두 모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포스터를 보며 떠올린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건 영화 시작 5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다. 영화의 배경은 전 세계 어린이들이 꿈에 그리는 공간인 ‘디즈니월드’가 위치한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외곽. 주인공인 여섯 살배기 딸 무니와 스물두 살 미혼모 헬리는 집도 없이 ‘매직캐슬’이란 모텔에서 산다. 올랜도 외곽엔 디즈니월드 특수를 노린 화려한 외양의 숙박업소가 많이 생겼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엔 극빈층의 임시 거처로 쓰이게 됐다고 한다. 천방지축 무니는 매직캐슬 옆 모텔 ‘퓨처랜드’에 이사온 친구 잰시와 장난스러운 모험을 이어간다.
미국 빈민층의 팍팍한 현실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무니와 잰시의 천진난만한 해맑음도 어쩐지 서글프다. 절도와 마약, 담배, 욕설, 주먹다짐 등에 찌든 무니 주변의 어른들. 생계가 어려워지자 성매매로 돈을 버는 헬리는 무니가 목욕하는 사이에 성매수 남성을 매직캐슬로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명소 근처에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무니와 헬리의 삶을 지켜보는 내내 한 장의 사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강남 도곡동의 주상복합아파트 ‘타워팰리스’와 그로부터 약 1.3㎞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판자촌 구룡마을이 함께 찍힌 사진이다. 지금은 좋은 아파트들이 많이 생겨 그 위상이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부의 상징’으로 군림하는 타워팰리스도 판자촌 자리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타워팰리스가 세워진 일대를 삼성그룹이 매입하면서 그곳 판자촌에 살던 사람 중 다수가 구룡마을에 터잡게 됐다고. 한국 최고의 부촌인 서울 강남구에 한국 최대규모 판자촌이 존재하는 아이러니의 배경이다.
‘부자는 결코 천국에 못 가지만, 빈자는 이미 지옥을 체험하고 있다’고 했던가. 성매매를 이어가던 헬리는 주변의 신고로 아동보호국에 딸을 빼앗기고 만다.
영화를 보며 심금을 울린 장면은 더 있다. 무니는 친구 잰시에게 숙소 근처에 쓰러져있던 나무가 좋다고 말한다. 그 나무는 쓰러져 있음에도 자라고 있기 때문이란다. 어른들 눈엔 미혼모 헬리와 힘들게 살아가는 무니가 쓰러진 것처럼 보일진 몰라도 무니도 분명 성장하고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그 나무와 자신의 처지가 같다고 생각한 것 같아 마음이 저렸다.
우리 주변엔 ‘쓰러진 나무’ 같은 존재들이 많다.
지난여름, 온 살림살이가 폭우 속에 떠내려가는 것을 하염없이 지켜봐야 했던 판자촌 사람들처럼. 국가가,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들이 자랄 수는 있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당장 그들을 일으켜세워 주진 못할지라도 말이다. 빈민, 장애인을 비롯해 이 사회의 모든 약자, 소외계층의 절규가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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